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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Warm-Justice : 정의란 무엇인가?
제 908 호    발행일 : 2016.05.30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우리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면서부터 시작된 물음이며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계속하여 던져지는 물음이다. 얼마 전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이 물음을 주제로 한 강의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교수를 초청하여 같은 물음에 대한 강연을 한 바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정의는 원칙적으로 “옳음”을 전제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 자유주의(Liberalism), 그리고 미덕(Virtue)에 의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입장에서 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교수의 강의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바탕으로 하는데 400여쪽이 넘는 저서를 통해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답이 오죽이나 어렵게 느껴지겠는가.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양법학 시간에는 법의 이념을 정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이는 소위 정의의 여신상을 통해 그 개념이 설명되고 있다.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여기에서 정의의 여신이 두 눈을 가린 것은 주관성의 배제를, 한 손의 저울은 법의 형평성을, 다른 한 손의 칼은 법의 엄정한 집행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법 아래에서는 예외없이 공평하고 엄정하게 취급된다는 것이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다. 바로 누구든지 “예외없이” 엄정한 취급을 전제한다는 입장에서 정의는 매우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하긴 정의(justice)라는 단어 자체가 바로 “just”가 “ice”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정의 자체가 얼음과 같이 차가운 공정함을 표현하고 있으니 달리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과연 정의는 이렇게 차가운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장발장”을 보자.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배고픔으로 인하여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에게 19년 간의 감옥살이를 하도록 하였고, 그 이후에도 소위 정의라는 이름을 내세운 자베르로부터 도망을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를 그렸다. 사실 우리로서는 장발장의 입장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무조건 자베르를 비난 할 수도 없는 것이 그만큼 정의는 차갑고 엄정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정의는 이렇게 차가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따듯한 정의는 존재할 수 없을까.
  정의라는 단어만을 보면 “warm” - “just” - “ice”는 사실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차가운 얼음이 따듯해지면 녹아 흘러내리기 때문에 평(공)평한(just)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정의를 구성하는 “just”를 우리 사회가,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스스로가 따듯한 마음으로 이를 공평하게 받쳐주고 있다면 어떠한가. 아무리 차가운 얼음이 녹아내리더라도 우리 사회의 따듯한 마음의 받침으로 인해 여전히 그 평(공)평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러한 점을 인식한 미국의 대학은 얼마 전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대학입시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는 마음이 따듯한 학생을 우선 선발하여야 한다고 했다. 바로 지난 1월말 하버드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발표된 “정세의 변화 :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학생선발을 위한 대학입시”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은 지난 해 7월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을 바탕으로 이미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 학생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토록 하기 위해서는 이에 더하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새로운 답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정의(justice)는 차가운 것이 아니라 따듯한 우리들의 마음을 받침으로 할 때 비로소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최소한 우리 대학에서부터 학생들에게 교양법학시간을 통해서라도 정의를 가르칠 때 차가운 정의가 아닌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할 줄 아는 따듯한 정의, 온정(溫正)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Warm Justice”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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