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8월, 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화물을 내리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들어오는 의류박스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각 지방에서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하루 종일 박스에 배송 스티커를 붙이고 화물창고로 넣는 작업을 했다. 다음날 새벽에 바로 화물트럭이 짐을 실어가기 때문에 내가 한 모든 작업은 땡볕이 강렬한 낮에 이뤄졌다.
모자와 쿨토시 그리고 스포츠 수건까지 온몸을 꽁꽁 감쌌다.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완전무장을 했다고 스스로 자신했지만, 아스팔트에 내리쬐는 햇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세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검은색 티셔츠는 마치 비를 맞은 듯이 젖고 있었다.
일을 마친 후, 하루 일당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티셔츠의 어깨와 겨드랑이 부분에 하얀 것이 피어났다. 그것은 땀으로 젖은 티셔츠에 염분이 엉기면서 생긴 소금 꽃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혐오보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열심히 일한 자에게만 피어나는 소금 꽃은 나에게 ‘훈장’과 같은 상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시 외곽에서 지하철을 탔기 때문에 빈 좌석이 많았다. 그러나 번화가를 지날 때마다 전동차 안은 사람으로 꽉 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옆 좌석은 비어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았다. 젊은 여성, 정장 입은 아저씨 그리고 나이 드신 할아버지도 멀뚱멀뚱 옆자리의 빈 좌석만 바라볼 뿐이었다.
문득 ‘티셔츠의 하얀 소금 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땀 냄새보다도 검은색 티셔츠와 하얀 소금 꽃의 극명한 대조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훨씬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금 꽃은 불쾌함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나를 점점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치 전동차의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 티셔츠의 소금 꽃은 더 이상 나에게 훈장이 아니었다. 단지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자국일 뿐이었다. 불편했고, 서둘러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딘가 씁쓸한 맛이 계속 느껴졌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상황을 두고도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같은 것을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고, 분노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 볼 때도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불교경전 <화엄경>의 핵심사상으로 “세상사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즉, 그 대상의 본질은 바꿀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원효대사도 “물상(物像)이 아니라, 자신의 그 마음 자체”라고 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사랑.학업. 인간관계.아르바이트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학우들에게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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