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재난현장의 효율적 수습을 위한 비상관리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지혜를 짜고 있으나, 아직 그 패턴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 아예 재난관리청 혹은 안전관리청을 신설한다느니 하면서 정책결정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인상이다’(1995년 7월 24일자 <동아일보>).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붕괴사고가 일어났다. 삼풍백화점의 주요 건물의 하나인 A동이 붕괴되면서 사망 502명, 부상 937명이라는 한국전쟁이후 단일사건으로 최대사상자를 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당시 여당과 야당은 안전관리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안전관리청 신설을 결정했지만, 정부와 여·야 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정치권의 이견으로 안전관리종합대책이 흐지부지된 후, 대형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어이없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통합해 재난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가 출범했다.
지난 12일 사망자는 없었지만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 일이 일어났다. 경주 남남서쪽 9km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본진에 앞선 전진의 규모가 5.1일 정도로 한반도 관측사상 최대 지진이었다. 전국에서 지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신문방송사에 있던 필자와 기자들은 탁자와 물병이 심하게 흔들린 것을 확인했다. 우리 학교의 고층 기숙사인 양진재와 양성재에서는 대피방송을 통해 기숙사생들을 야외로 대피시킨 일도 있었다.
지진자체는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이전의 대형 참사처럼 예측이나 예방이 어렵다. 그러나 지진의 진동이 지표면까지 전달되는 속도가 있기 때문에, 빠른 조기경보로 재산 및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국민안전처의 대응이 아쉽다.
긴급재난 문자를 지진 발생 10분 후에야 발송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조기경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아예 일부 휴대전화에는 긴급재난 문자가 발송되지도 않았다. 실제로 진앙지 반경 200㎞안에 있던 필자의 지인은 긴급재난 문자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인터넷과 카카오톡이 먹통이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민들이 지진에 대한 정보를 알 방법은 거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재산피해 외에 인명피해는 경미했지만, 이번 지진으로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다. 또한 이번 지진의 진앙지 부근에는 우리나라 원전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앙은 0.1%의 가능성만 있어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괜찮다, 안전하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책을 세우고 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항상 대비하는 마음으로 우환(憂患)을 덜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