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에서 ‘교양’과 ‘교육’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삶의 조건이 급격하게 바뀌었고, 바로 그 때문에 교육환경도 변한 까닭에 배우고 가르치는 일도 새로 재편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런 문제에 납득할 만한 견해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급격하게 바뀐 생활환경이란 물론 인터넷 자본주의 세계를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정보는 어디나 널려있다. 넘치고 넘치는 것이 정보고 자료이며 ‘매뉴얼’이고 ‘앱’이다. 카카오 톡이든 트위터든 아니면 페이스 북이든, 스마트 폰을 쓰거나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으면, 요즘은 사회생활조차 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 낙오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혹은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매일 매순간 클릭을 하면서 문자를 확인한다. 현대인은, 마샬 맥루한이 적었듯이, ‘유목민적 정보수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 정보사회의 시민적 덕성은 디지털 접속능력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인터넷 정보는, 자주 지적되듯이, 유용하고 편리하면서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정보가 유용하다면, 그것은 표준화된 방식으로만 그럴 것이다. ‘표준화된 방식’이란 좋게는 상식적 수준이고, 나쁘게는 상투적이라는 뜻이다. 인터넷 정보는 편의와 유용성을 겨냥한다. 아니면 기분전환을 위한 여흥거리이거나 시간 죽이기 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어떤 정보가 중요하고 어떤 정보가 쓸모없는지에 대한 기준은 드물다. 그것을 학교나 학원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실존적 문제다.
가령 나의 절실하고 절박한 고민에 디지털 정보는 도움이 되는가? 그것은 나의 사랑이나 작별, 혹은 고뇌나 아픔에 적절한 답변을 주는가? 인터넷 정보는 인간이 이 세상에 우연적으로 던져져 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하고 있으며, 매일의 생계를 걱정하고, 장래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인터넷은 인간의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문제는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오늘날 교양교육의 문제는, 각종 수험서나 자격증 강의에서 보이듯이,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어 있다. 교육은 사회적 지위상승이나 명성획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교육의 전부는 아니고, 삶의 전체 가능성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변화된 현실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만나는가? 정보의 취사선택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고, 바른 사회성이란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형성’과 ‘자발성’ 그리고 ‘전인적 인격실현’ 같은 교양이념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전통적 교양인문주의(Bildungshumanismus)를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 이제 교육은 전통적 교양이상이 지닌 허위성, 말하자면 교육의 문제를 ‘정신’ 혹은 ‘내면’의 형성에만 국한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한 이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교양이념의 훌륭한 유산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런 수용은 현실의 엄밀한 검증과 비판적 재구성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배움에서 변함없는 핵심은 각자의 ‘자발성’이고, 교육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기형성(Selbstbildung)의 과정이다.
교육은, 학교라는 제도를 통하건 통하지 않건, 교육받는 주체가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고 나아지려고 애쓸 때, 비로소 시작한다. 그 점에서 교육은 무엇보다 ‘자기교육’이다. 그래서 자발적이어야 한다. 자발적 자기기율의 원리야말로 모든 개인형성과 사회변화의 출발점임에 틀림없다. 학교나 교사는 개인의 이러한 자발성을 옆에서 돕고, 그 자기형성적 결단을 장려하며, 여러 가지 시설과 합리적 프로그램을 통해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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