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좀비영화로 흥행 가도를 달리는 <부산행>을 보았다. 영화 속 악역을 연기한 배우 김의성 씨의 ‘명존쎄’(명치를 xx 쎄게 때리고 싶다) 공약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인지라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빠르게 돌진하는 좀비들의 새로운 모습에 빠져들고 있을 때 쯤, 영화 속 상화(마동석 분)의 대사가 내 가슴을 차갑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네 딸이 조금 더 크면 네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사는지 알게 되지 않겠냐? 아빠들은 원래 욕먹고, 인정 못 받고, 그래도 희생하고 사는 거지. 안 그래?”라는 대사였다. 자기 딸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는 석우(공유 분)에게 하는 대사였다.
영화에서는 코믹적인 요소를 가미해 대사를 풀어나갔지만, 결코 가볍게 와 닿는 대사가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잘 표현한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시대의 도래로 정년퇴직 이후의 삶이 길어지면서 회사를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TV를 통해, 그리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은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 왔지만, 정작 그 속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들은 점점 작아져 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일평생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의 히어로는 어느새 아버지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것이 ‘그건 아버지가 회사 다닐 때 가족들에게 잘해 주지 못 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서 아버지는 가족을 돌아보지 못하고 회사 일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러면서 마음을 표현할 시간도 방법도 잃어 버렸고, 가족과의 관계는 점점 서먹해져버렸다는 것을. 그런 아버지를 우리는 방관하고,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지 않았기에,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작아진 것이다.
쌀쌀함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따뜻한 붕어빵 한봉지 사서, 오늘도 집에서 외로이 TV만 보고 계실 아버지 옆에 앉아 함께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서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한 발짝씩 다가간다면 훗날에 우리에게 남을 후회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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