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청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승점에 도착한다. 그때 양팔을 들고 ‘X자 세리머니’를 펼친다. 그의 이름은 페이사 릴레사(26)다. 에티오피아의 젊은 마라톤 선수로 각종 육상경기대회를 석권한 유망한 선수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런 그가 펼친 X자 세리머니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탄압으로 죽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는 에티오피아인이면서 오로모족이기 때문이다.
오로모족은 오로미아 주에 사는 에티오피아의 소수민족이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가까운 곳에 살다보니 도시 확장과 개발에 늘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최근에도 신개발 정책에 맞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오로모족 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올림픽에서의 정치적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자칫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가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제올림픽 위원회(이하 IOC)의 올림픽 헌장 50조에서도 ‘일체의 정치.종교.상업적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IOC의 진상조사와 더불어 획득한 메달도 취소될 수 있다.
X자 세리머니 이후,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자신이 지금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도 페이사 릴레사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저버린 채로, 이제 그의 선택지에는 난민.망명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70년 전에도 있었다. 1935년 베를린 올림픽, 24살의 젊은 선수인 손기정은 42.152km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그는 시상대에 설 때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묘목으로 가렸다. 식민지 조선 청년의 슬픈 세리머니였다. 당시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프다!!?’라고 적혀져 있었다.
이런 그의 행동을 일제는 보고만 있지 않았다. 조선인들의 저항의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임에도 양손이 밧줄이 묶인 채로 돌아왔다. 올림픽 영웅에 걸맞는 환영행사도 없었고, 이후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 살아야 했다. 각종 육상경기대회의 출전도 금지되었다. 당시를 손기정 선수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다고 기억했다.
페이사 릴레사와 손기정,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마라톤 선수였고, 침묵의 행위로 자신의 민족을 탄압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자신에 대한 신변의 위협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보여준 용기였기에 더 값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살다보면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있다. 부당함에 대항할 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도,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때도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시절이다. 그래서인 나의 용기는 지금 살아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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