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의 사람이 모였다. 불상사도 없었다. 새로운 시위문화다.
군부독재 때의 시위는 어깨동무를 하듯 스크럼을 짜고 달리는 형태였다. 뭉치는 것이 위주였던 시절이다. 경찰은 최루탄을 무기로 썼고, 이에 대항하는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졌다. 1980년대 학생운동의 모습이다.
세기가 바뀌면서 최루탄과 화염병은 사라졌지만 이를 대신하는 물대포와 쇠파이프는 여전히 우리의 시위를 상징했다. 때문에 안타까운 일은 계속 일어났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이라는 명분으로 시위대를 통제했고, 시위대는 분노를 경찰버스에 풀었다.
2016년 11월 12일,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대규모 시민이 운집했다. 대중가수도 나왔고, 유모차도 나왔다. 할아버지도 나왔고 어린 학생도 나왔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폭력적이지 않았다. 국민은 분노했지만 행동은 차분했다. 돌과 막대기를 촛불이 대신했다. 촛불은 폭력이 아니라 기도이자 염원이었다. 열망은 폭력보다 강한 법이다.
다시 돌아가 1980년 5월의 봄, 대학의 정문을 탱크가 지키고 교정에는 군대가 진주했다. 이후, 80년대 내내 경찰은 학내에서 신문지에 싼 무전기를 들고 오가며 정보를 채취했다. 전단이라도 뿌려지면 단 5분 안에 주동자를 체포하고 제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잠시의 함성에 이은 오랜 침묵이 대학가의 일상사였다. 그래도 목소리는 멈춰지지 않았다. 거리에는 경찰의 불심검문이 창궐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쥐불처럼 번져나갔다.
1987년 6월 항쟁은 빼앗겼던 대통령직선제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싸움이었다. 넥타이부대라고 불리는 회사원들이 거리로 나섰고,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층건물에서 시위대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휴지를 뿌렸다. 마치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세계가 주목했다. 그리고는 대한국민이 주권을 쟁취하는 쾌거에 감탄했다. 당시의 대통령 후보는 약속했다. ‘나를 만화의 주인공으로 삼아도 좋다’고. 결국 그는 신문만평의 단골이 되었다.
이제 오늘 ‘n포’ 시대의 청년들이 거리로 나왔다.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정치를 말했다. 국가를 말하고 주권을 말했다. n포에서 적어도 정치 하나만큼은 빠지는 n-1포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정한 변혁은 목소리를 내지 않던 사람이 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n포 시대의 청년 학생들이 의견을 내고 그들의 입장을 관철시킬 때, 우리의 미래는 밝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안은 망한다.
세계가 또다시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얼굴이 되었다.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라는 표어는 ‘정치는 상류, 국민은 일류’라고 읽힌다. 금수저 상류층만의 정치로 뼈 속까지 일류인 국민을 이끌기는 틀렸다. 상류는 신분이지만, 일류는 실력이다.
오늘 우리의 대통령은 밉다. 그러나 반면교사가 되어 우리 학생들에게 정치를 포기하지 않게만 한다면, 우리 청년들이 정치적 승리의 기쁨을 단 한 번만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그리고 자리를 두고 싸우는 정치인들이 진정 우리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해준다면, 대통령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하여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둘씩 늘어나 언젠가는 n-n포 시대가 될 수만 있다면, 마침내 0포 시대가 될 수만 있다면, 아니 -n포기를 넘어 +n희망의 시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오늘의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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