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풀어 제로금리, 초저금리라는 극약처방으로 기업과 가계를 살려보려 했지만 시장에 공급된 자금은 산업과 가계로 선순환하지 못하고 증권과 부동산시장에 집중되어 투기 자본화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소수에게 부가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시민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설사 일자리를 얻더라도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삶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거친 파도를 넘어온 배가 안전 항에 정박하지 못하고 험준한 산으로 올라가버린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이미 일본과 같이 장기불황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경제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2000년대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정치적으로 보수 진보 이념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가운데 국민들에 대한 복지를 경시하고 성장 우위를 중시하는 정책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그 성장정책이란 것이 실은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계층 간 소득격차의 양극화가 지나치게 가속화되고 있고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심각해지고 있다.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 가고 투기적인 금융 산업은 비대해지는 산업간 양극화는 물론, 대기업 주도형 경제운용으로 중소기업이 활력을 찾지 못하는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서울은 번창하고 지방은 자족력을 잃어가는 중앙과 지방간의 양극화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구조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현상은 정치지배 권력이 정의롭지 못한 경제 사조를 선택할 경우에 그 위험과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양극화 현상들은 글로벌스탠다드라 하여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모방하기 위한 국가들 간의 과도한 정책 경주가 초래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논리와 계약자유에 바탕을 둔 강자 중심의 친 시장적 법과 제도를 본질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경제적 비용과 편익을 앞세워 시장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국가나 공동체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시장을 지배하는 자의 탐욕도 계약자유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된다. 또한 강한 자는 더욱 강하게 되고 약한 자는 더욱 약해 질 수밖에 없는 불합리와 모순을 구조화시킨다. 요컨대 이러한 경제사조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무한경쟁과 단기성과를 중시하는 기능주의적 사고를 낳았고 경쟁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악순환이 예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정책적 처방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국가마다 신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땜질식으로 양극화 문제에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방임적 계약자유를 방관함으로써 개인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자유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는 몰라도 사회 구성원의 공통이익이 중시되는 사회체제에서는 조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을 소수자에게 부의 집중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무한한 경쟁과 효율중심의 기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자본의 가치를 존중하는 인본주의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시장지배자의 보다 현명한 절제와 함께 사회구성원 모두의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인간다운 삶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의 공통 선을 실천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새로운 국가경영모델을 찾아내야 한다. 대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연구역량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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