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우리 학교에 입학하고, ‘학업’으로만 한 학기를 보냈다. 심지어 처음 맞이한 대학교에서의 여름방학도 계절학기 수업과 토익공부에 매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대학생활을 공부만 하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고,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회의감만 가득 찰뿐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활동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때마침 우리 학교 신문사에서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고등학생 때, 환경일보에서 언론수업을 받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인터뷰해 책으로 출판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살리고, 대학교에서 보다 알차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물론, 소정의 활동비가 지갑 사정을 넉넉히 해줄 것 같은 이유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이후 1.2차 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수습기자로 선발됐다.
6개월 가량 학생기자로 있으면서 여러 기사를 썼지만, ‘특집면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과 맞물리면서, 서울 광화문으로 취재를 나갔다. ‘발로 뛰는’ 첫 기사이고, 살면서 처음 가본 시위 현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 깊었고, 떨리기도 했다. 시위 모습을 더욱 잘 담아내기 위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촬영하기도 했었고, 시민 한 분씩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학생기자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힘들거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신문발행을 위해 3일간의 편집과정을 거치는데, 빠르면 10시 30분, 늦으면 새벽에 끝나기 때문에 졸음을 참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기사의 트리를 구상하고, 취재를 나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개인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또한, 3일간 지불하는 할증 택시비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스무 살의 생일을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6개월간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신문을 발행하는 과정, 그리고 학생기자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주변으로부터 ‘사범대생이 왜 굳이 신문사에서 활동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으며 진이 빠지기도 했고, 힘들게 발행한 신문이 돗자리로 사용되는 모습도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지만, 쌓여가는 신문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과 자신감도 커져갔다. 또,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물어볼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참으며 작성한 기사가 신문으로 발행됐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배운 점들이야말로 대학교에서 배운 대학(大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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