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 담론의 새로운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쯤, 정확히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즉 이세돌과 알파고의 흥미로운 대국이 있은 후, 인공지능의 가공할 위력에 자극받은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심지어 대선 출마예정자까지도 너나없이 이 4차 산업혁명을 핵심 정책과제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물리학과 생물학 등 관련 기술이 융합.접목되면서, 심지어 인간과 기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정도로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삶과 일, 관계와 소통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기기관으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과, 전기 에너지의 사용과 대량생산방식의 도래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은 물론, 심지어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키보드를 두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의 생각이 바로 디지털화되는 기술이 대표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생활의 편의성을 다시 한 번 획기적으로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것이 이 담론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무릇, 학문과 실제 세계에서 새로운 주장과 논리 및 이론이 제기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시도와 경쟁을 통해 현실을 좀 더 잘 설명하고 예측하는 주장이 결국 설득력을 얻어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안착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단선적이고 일면적인 주장만이 타당할 정도로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일면적 주장에 대해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화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비판하는 지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그러한 비판적 지성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 보루가 바로 대학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심지어 그 대학에서마저도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긍정론만이 압도적일 뿐, 그러한 기술혁신이 야기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기술과 그 기술을 보유한 인력 양성을 위한 기능적 차원의 교육만이 우선시되는 듯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기술은 비록 강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또 대개의 경우, 그러한 기술의 충격은 공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회의 복잡한 경제적, 사회적 관계가 기술혁신의 충격을 상이하게 파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일련의 기술혁신으로 인해, 불과 10년 안에 약 180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일자리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전체 취업자의 약 70%가 크든 작든 이러한 위협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인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많이 생겨 이러한 고용위협을 완화해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기술의 기존 일자리 대체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이러한 대체효과는 관리직 등 고소득층보다도 단순노무직 등 저소득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확산된다 한들 향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층 등 우리 사회와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지는 세상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놀라운 변화와, 그러한 기술혁신이 요구하게 될 새로운 역량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가 진정 지속가능하고, 또 모든 사회 성원들의 삶과 복지에 좀 더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대학은 단순한 기능인 양성소일 수 없다. 향후 우리 사회가 겪어나갈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미래 변화와 관련해서 대학이 좀 더 균형 있는 담론 형성에 기여하는 한편, 좀 더 깨어있는 지성을 키우는 교육을 시행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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