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사건은 그동안 우리가 별다른 의심과 저항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생활필수품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생활화학용품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고 2013년 7월 생활화학가정용품 8개 품목이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지정·관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소비자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발생한 살충제 계란은 천정부지로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던 계란가격을 단숨에 반토막냈으며, 발암물질 생리대는 아직 실용성이 검토되지도 않은 생리컵을 대안으로 제시할 정도로 여성소비자들을 불안과 혼란에 떨게 하고 있다. 생리대와 관련해서는 이미 2013년에 곰팡이 생리대 사건으로 인해 큰 혼란이 일었던 바 있어 여성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다.
이러한 일상적 불안은 위험한 물질이나 제품을 원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움직임으로까지 나타났다. 화학성분 제품을 거부하는 ‘노케미(No-Chemicals)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친환경 주방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간단하게 집에서 천연재료를 이용해 주방세제나 샴푸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것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는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16년 5월 소비자시민모임에서 전국 20세 이상 59세 이하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활화학제품 안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생활화학용품의 안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답했으며, 그 중 69.2%는 천연재료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노케미-라이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은 제품의 디자인이나 가격, 브랜드 네이밍 대신 라벨 속 성분을 꼼꼼히 살펴보는가 하면 직접 제조 과정과 친환경 인증 마크 유무를 따져가며 새로운 소비 기준을 세우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점점 더 편리함에 익숙해져 왔다. 좋은 품질이라 함에는 편리함이라는 속성이 자연스레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편리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성이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보다 높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우수한 기술이 적용되고, 더 안전한 성분이 개발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은 제품은 가격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정도의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안전욕구가 높아졌다. 문제는 안전성과 편의성이 함께 확보되기 어렵다는데 있다. 따라서 안전을 위해 노케미 라이프를 실현하려면 편의성은 많은 부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 노케미족으로 일주일 살기를 시작한 모 신문기자에 의하면, 첫날부터 화학용품을 피해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와 샤워를 치약과 샴푸가 아닌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화장은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이며, 식사후 설거지는 세제없이 할 수 있을까? 아기가 있는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티슈도 말이 많은 제품인데, 매번 물로 아기 엉덩이를 씻어주는 건 평소보다 10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생리대를 사용한다면, 휴대와 세척을 위한 번거로움과 시간을 역시나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도 대부분은 화학섬유를 함유하고 있는데, 옷조차 100% 천연섬유가 아니라면 피해야 할까? 그것이 가능할까?
일상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원론적인 얘기지만 철저한 관리와 양심적인 기업경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유명무실하게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제조물책임법도 더욱 실용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제조물책임법에서는 결함있는 제품으로 인해 소비자가 입은 피해를 제조자가 보상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품 결함으로 인한 피해임을 소비자가 증명해 보여야 하는 기술적 어려움때문에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상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제조물의 결함여부 판단을 위해 제조사가 결함없음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통해 악의적 기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사고발생시 실손보장을 의무화하여 일시보상금 또는 위로금의 형태가 아닌, 일정기간 동안 발생하는 병원비 등을 전액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사고발생시 역학관계 조사와 상관없이 선리콜, 후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는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나 제도가 좋은 제도로 자리잡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잘 지키고 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는 제도와 함께 이 제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소비자 스스로가 지키고 감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 돌리기에 앞서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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