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핑크플로이드(Pink Floyd)라는 록 그룹이 있었다. 초현실적 메시지를 웅장한 사운드에 담아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서, 나중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밴드였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으니 음악에 관심깨나 가지셨던 연세 지긋한 분들이라면 몰라도, 지금 캠퍼스를 활보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다. 이들이 1970년대 말 발표한 <더 월>(The Wall)이라는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수 천 만장 이상 판매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Another Bricks in The Wall, Part 2’라는 곡의 가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나 교육의 현실에 비추어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우린 교육이 필요 없어요. 우린 생각을 통제받고 싶지 않아요 … (중략) … 이봐요 선생님. 우리를 좀 내버려 두세요. 당신이 바로 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벽돌입니다.”
지난 달, 세월호의 마지막 미수습자로 남아있던 단원고 학생 2명이 많은 회한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 사회와 학교를 떠나가는 영결식이 개최된 바 있다. 그 기사를 접하며, 새삼스럽지만 다시 질문을 떠올려 본다. 왜 이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배가 기울어져 선실 안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운 형편인데도, 왜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한 마디에 그토록 착하게 순응했을까? 사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중첩된 여러 모순과 비리를 응축한 사고였다. 상습 과적과 선체 불법개조 및 증축이 버젓이 용인될 수 있었고, 승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부터 살고보자고 가장 먼저 탈출했던 선장은 우리 사회 직업인의 소명의식이 얼마나 비루하고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진실과 비리 덮기에 급급했던 최고 권력자를 위시한 여러 공직자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는 세월호를 구할 수 없었다”는 소설가 김훈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충분히 공감이 가고 남음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순과 비리로 응축된 더 큰 세월호인 우리 사회는 결코 세월호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절망과 수동, 좌절과 포기, 모멸감과 권위주의가 넘치는 교실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핑크플로이드와 세월호를 교차시켜 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우리 학생들의 배움터인 교실은 진정 열린 공간이지 못했을까? 왜 이들은 평소 교과서와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문하지 않고, 그저 제시된 정답을 외우기에만 급급해야 했을까? 왜 이들은 맘껏 창의적인 끼를 발산하지 못하고, 기성세대들이 쌓은 ‘벽’을 공고히 하는 한 장의 벽돌이 되기를 수용해 버렸을까? 이러한 의구심은 비단 중고등학교 교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왜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강의실마저도 제대로 된 토론과 비판이 살아있는 교육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대학은 진정 비판적 지성과 책임있는 공동체 의식, 높은 직업적 소명감과 진정한 리더십이 살아있는 그런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대학이 진정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을 위한 실험장이 되지 못하고, 갈수록 취업준비 학원을 방불케 하는 곳이 되어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 진정한 ‘교육혁명’이란 어쩌면 우리의 강의실을 학생들의 질문과 비판이 살아있는 열린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강의실을,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벽을 공고히 하는데 필요한 벽돌들을 제조.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왜 그 벽 자체가 굳이 필요한지에 대해 근원적인 반문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올 해로 66년의 긴 역사를 일군 우리 충북대학교가 그간 이루었던 여러 업적을 자랑하는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다. 66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고, 또 그러한 세월의 시련을 잘 이겨낸 우리 학교가 물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 우리 학교가 과연 그러한 교육혁명의 공간을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왔는지에 대해 반문해 보는 것도 한번쯤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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