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보수적이다. 그래서 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이 ‘음지’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성 경험 연령대는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일 중요한 피임법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피임법과 성관계 후의 태도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지만,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이렇다 보니 인터넷과 SNS 상의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지식에 의존해 성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지난 13일 ‘낙태죄 폐지’에 관한 취재를 위해 학교를 돌아다니며 300명의 학생에게 의견을 물었다. ‘낙태죄 폐지’에 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물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바로 말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대답하거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던 작던 한 번 쯤은 고민하게 되는 것이 낙태 문제일 텐데도 무관심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관심은 있어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를 꺼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낙태죄의 불편한 진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낙태죄가 존재해도 불법 시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낙태죄는 주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 협박하는 사례도 많았다. 법과 현실의 간극이 크게 느껴졌다.
최근 많은 부분에서 남녀평등이 실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낙태는 여성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여성만이 그 책임을 짊어지는 경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옭아매는 악법’대 ‘생명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양법’이라는 논리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한 번쯤은 여성의 입장에서 낙태법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23만여 명의 청원으로 낙태법 폐지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이 예정돼 있는 지금, 청와대의 입장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답변의 내용에 따라 생명을 경시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여성을 차별하는 악법을 유지시킨다는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는 계속 유지돼야 하겠지만, 낙태한 여성이 당연히 죄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낙태가 장려되고 증가하는 것에는 낙태죄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노력이 먼저 선행될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부담스러워 점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불법이지만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있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이제 낙태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우리 사회의 역량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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