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최근 몇 년간 ‘갑(甲)질’이라는 신조어가 신문 기사에서 사용된 횟수가 2만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갑질’이라는 언어를 통해 비쳐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자는 이번호에서 시간강사와 대학생 대외활동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시간강사와 대학생, 어쩌면 사제지간일 수 있는 그들 사이에는 도무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을(乙)’ 또는 그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강사법’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제정의 계기가 됐던 故 서정민 박사의 죽음 전후에도, 많은 강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강사의 부당한 처우가 문제시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간강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시행도 못하는 강사법의 제정 이후 고용 불안이 더욱 심화되었고, 있는 일자리마저 잃을까 걱정해야 하는 것이 대다수 시간강사의 현실이다. 실제로 2011년 10만 3,000여 명이었던 시간강사의 수는 2016년 7만 9,000여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렇듯 부당함을 감수하면서 생업을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을’이다. 그리고 이러한 을의 자화상에서 대학생도 자유롭지 못하다.
점점 더해 가는 취업난 속에 대외활동은 어느새 취업을 앞둔 대학생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남들 다 하는 대외활동을 안했다가는 취업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렇다 보니 대외활동에서 피해를 겪는 대학생의 수 또한 자연스레 증가했다. 점차 대외활동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돼가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활동을 하겠다는 대학생은 줄지 않는다. 단순 노동을 강요받고, 자신의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대외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당함을 감수해서라도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갖춰야 하는 이들의 간절함 때문이다.
이러한 대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 가혹하다. 그들이 가진 간절함을 ‘싼 맛’에 쓰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잔인하다. 노동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실상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시간강사와 대학생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을’이 있다. 그들 역시 어디선가 부당한 대우를 애써 참으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기자는 이런 ‘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을’에게, ‘당신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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