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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청년세대의 직장과 일에 관한 태도 : 그 불편한 역설
제 929 호    발행일 : 2018.04.09 

  ‘사람이 곧 경쟁력’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명제가 가지는 중요성은 경쟁력의 기반으로서 지속적인 창조와 혁신 능력이 더욱 긴요해질 4차 산업혁명과 21세기형 조직에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지속적 창조와 혁신은 많은 경우 사람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몰입, 열의와 창의성에 의존하고, 또 거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에서는 사람들이 평소 자신의 조직과 일에 대해 갖는 태도인 조직몰입과 직무열의에 관한 관리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어 왔다. 주지하듯이 ‘조직몰입’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갖는 구성원의 자부심과 애착심을 일컫는다. 또 ‘직무열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얼마나 헌신하고 몰두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혼을 심듯 땀과 열정을 아끼지 않을 때, 개인의 성과는 물론 조직의 성과도 당연히 높아질 수 있다. 경쟁력의 심리적 기반으로서 몰입과 열의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슈를 단순히 개인 차원의 태도 문제로만 치부해 온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개인이 교육과 정신무장을 통해 자신의 태도만 잘 고쳐 가지면, 그가 느끼는 조직몰입과 직무열의의 수준도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다고 손쉽게 생각해 왔다. 물론 태도의 형성에는 이런 개인적인 요인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태도를 형성해 갖는가에 있어서는 그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조건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젊은 청년층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이러한 시각에서 진단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 사회 젊은 청년세대가 형성해 갖기 쉬운 몰입과 열의의 태도를 둘러싼 가장 불편한 현실과도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이 자살률, 산재 사망률, 저임금 노동자 비율, 남녀 간 임금격차, 연간 노동시간, 비정규직 비율 등에서 OECD 내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정도의 뉴스는 이제 진부한 것이 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한참 꿈을 키워갈 젊은 세대들이 ‘N포세대’를 자칭하면서 긴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어렵사리 입사 관문을 뚫고 이른바 ‘괜찮은’(decent) 직장을 구해 일을 한다고 해도 사정은 여전히 녹녹치 않다. 직장 내 수직적인 위계문화는 이른바 갑을관계 의식과 모멸적인 인간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젊은 직장인 층의 의욕과 기를 꺾기 일쑤다. 몇 해 전에는 심지어 입사 1년차 사원들까지 희망퇴직의 대상으로 삼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기업도 있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이러한 사회적 공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거의 모든 공기업들에서 상당한 규모의 채용비리가 구조적으로 있어 왔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가 마땅히 지켜왔어야 할 공정성의 최후 마지노선마저 일방적으로 무력화시켜 왔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우리 젊은 세대들은 우리 사회, 우리 기업들에 대해 과연 어떠한 태도를 형성해 가질 수 있을까? 설령 이들이 원하는 조직에 입사를 한다 한들, 과연 얼마나 높은 수준의 조직몰입과 업무에 대한 열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상시 야근체제와 모멸적인 직장 내 인간관계에 지친 우리 사회 젊은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가장 하고 싶어 하는 말은 “과장님, 저 로또 당첨됐거든요. 안녕히 계세요!”일 것이라는 한 논객의 지적은 비록 씁쓸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공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몰입과 열의 대신, 이처럼 도구적이고 냉소적인 시각과 태도를 키워 가도록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온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기성세대와 기존의 대학교육 체제는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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