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갑질 행태가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얼마 전 한진가 로얄 패밀리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요즈음에는 이른바 ‘물컵갑질’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갑질의 유치하고 치졸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지만, 우리 사회의 갑질 행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권력기관, 기업, 병원, 대학 등에서의 성희롱이나 성폭행, 학생에 대한 위력행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와 프랜차이즈사업 등에서의 우월적 지위의 남용, 사용자의 피용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부당한 횡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원배분을 놓고 벌어지는 중앙정부의 재량남용 등 일일이 적시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외국인 저임노동자에 대한 기업 내 인권 유린과 인종 차별 현상도 널리 알려져 있는 갑질 행태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사회의 갑질 행태는 이제 계층과 성별, 학력과 지위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한국적 문화의 상징적인 속성이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갑질 행태가 우리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갑질은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우리사회는 양반문화와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유지하면서 30여 년 간의 군사정권에 의한 권위주의가 지배해왔다. 동서양의 학자들도 한국사회를 권위주의 사회로 규정하는 데에 이설이 없을 정도이다. 권위주의 사회란 지위의 고저, 신분의 귀천 등에 따라 사회가 조직화되고 서열에 따른 특권과 차별을 당연시하거나 수용하는 정도가 높은 사회를 지칭한다. 국어사전이 갑질을 권력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와 거세계 밀려온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하여 부의 집중과 세습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부에 의한 사적 권력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사적 권력이 공적 권력을 지배하게 되고 갑질 현상도 사적 권력세계로 깊숙이 침투되어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갑질 행태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사회적 악습으로서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아니 된다. 갑질은 대부분 궁박한 지위에 있는 상대방에게 인격을 무시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거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법률적으로 볼 때에 갑질은 인간으로서의 존중받아야 할 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불법행위이다. 갑질 행태가 만연되면 사회적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갑질은 미래 사회에 대한 국민의 행복기대가치를 훼손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행위이다. 경제력으로 세계 상위권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가 질적 수준이 높은 문화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부와 권력에 의한 권위주의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질 행태는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결코 유야무야 방치되어서는 아니 된다. 법제도적 장치를 강구하여 갑질 행태를 사전에 철저히 방지해야 한다. 갑질에 대한 사후적 처벌수준도 과거와는 달리 보다 엄격해져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부의 축적과 출세를 위하여 인간을 도구화하는 물질적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하는 인본주의로 회귀하는 일이 시급하다. 신분, 계층, 성별, 인종, 학력, 지위가 다르더라도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식으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배려 속에서 소통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교육체계의 근간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기능인간의 양성체제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인적 자본을 중시하는 인본주의를 교육의 핵심기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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