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품격, 미래’
지난 8월 23일 취임한 김수갑 총장이 제시한 대학운영의 핵심가치다. 김수갑 총장은 선거토론회에서도, 총장 취임사에서도 이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조화는 생산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갈등의 치유와 소통이며, 품격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니 자유와 자율성에 근간한 대학다운 대학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미래는 치열한 도전으로 학생, 직원, 교수 모두가 주체가 되어 열고 만든다.
대체로 선거의 구호는 그 뜻이 아름답고 원대하나 공허하다. 공허를 채우는 것은 당선자의 책임이고 의무이니, 구호의 허와 실은 앞으로의 대학 운영에서 드러날 것이다.
세 핵심가치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품격이다. 품격이 조화와 미래의 성격과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정신은 자유이며, 그것은 대학운영의 자율성으로 발현된다. 그러므로 대학의 품격 또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 나아가 품격을 해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대평가제도이고 둘은 돈이다.
한때 교정에 ‘잘 가르치겠습니다’라는 구호가 나부끼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당연해서 약속으로 삼기엔 민망하지만, 문제는 잘 가르쳐도 문제인 것이 상대평가제도란 것이다.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또 시험을 잘 보아도 때로 좋은 성적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학점 당 인원비율이 정해졌기 때문에 점수가 좋아도 C학점을 부여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점수는 좋은 데 C를 주어야 하는 교수는 곤혹스럽고, 시험을 잘 보고도 C를 받아야 하는 학생은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강의실의 분위기는 학기 초부터 차갑고 쌀쌀하다. 수강인원이 적은 전공과목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교수는 해결방법을 찾느라 고민하고, 수강생들 사이의 눈치와 견제도 치열하다. 각자의 학문적 성취 대신 동료를 눌러 이기는 경쟁의 우위가 목표가 되니, 상대평가 제도는 비인간적이다. 상대평가제도 아래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품격을 말할 수 없다.
돈도 그러하다. 이미 오랫동안 재정지원 사업은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사업기관들은 대학에 대학정원감축, 학칙변경, 학과통폐합 등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는 요구를 서슴지 않았고, 그것은 정치적 목적과 결부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대학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 등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특히 대학정원감축의 폐해는 심각하다. 사업의 지원은 수년에 불과하지만, 대학정원감축에 따른 대학재정의 감소는 거의 영원하고 회복할 수 없다. 우리대학 재정의 어려움은 많은 부분 정원감축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수갑 총장이 취임사에서 “우리대학은 거점 국립대학 중 규모면에서 열세적 위치에 있습니다. 규모가 작으면 재정적인 측면에서나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라고 일갈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재정사업은 필요하나 때로 대학예산과 운영에 부정정인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재정사업에 참여할 때에는 우선 그 사업이 대학전체에 가져올 득실을 먼저 헤아릴 일이다.
품격을 대학운영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설정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대학의 질적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대학, 이 얼마나 좋은 비전인가! 그러나 품격있는 대학은 구호만으로는 공허하다. 혁신적 사고와 실천이 필요한 일이다. 대학운영의 새로운 개념과 방법을 찾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고, 타성과 인습을 뛰어 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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