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전해 내려오는 많은 설화중 하나인 무심천 이름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설화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혀보고자 한다.
1901년 고종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고종의 엄비가 잠을 자는데 꿈에 부처가 나와 청주 지주(지금의 시장)가 사연을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을 구해달라며 울었다. 뒤숭숭한 꿈에 바로 청주 지주를 찾아갔는데, 당시 청주 지주였던 이희복은 꿈 내용을 듣고 놀랐다. 이희복도 며칠 전에 부처가 나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나흘 전 이희복의 꿈에 이마에 피를 흘리고 목에 이끼가 낀 부처가 나와 서쪽의 큰 늪에서 구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희복은 사람을 보내 서쪽 늪을 조사하게 했고, 지금의 무심천 옆 늪에서 이마에 상처가 난 채 머리부분만 밖으로 나온 석불을 발견했다. 그날부터 이희복은 사람을 동원해 무심천 물을 7일동안 퍼내고 미륵불상 일곱 개를 발견했다. 불상들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용화사에 있던 것으로 대홍수로 인해 절과 함께 소실돼 오랫동안 묻혀있던 것이었다.
이후 고종은 이희복에게 재물을 내려 절을 세우고 발견된 불상을 모시게 했다. 그 절이 현재 무심천가에 위치한 ‘용화사’이다. 이 사건 이후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무심한 세월만 흘렀다 하여 그 개울을 ‘무심천’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통나무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위해 돌다리인 ‘남석교’를 세웠는데 이같은 사연을 알리없이 무심히 흐르기만 한다고 하여 ‘무심천’이라는 설도 있다.
설화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세분화하면 전설, 신화, 민담이 있다. 이 중 전설은 지역적인 특색을 보인다. 신화는 민족적인 특징을 띠며 민담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청주지역의 전설은 삼국시대부터 접경지였던 위치적 특징을 반영하듯 축성전설이 많다. 지역설화는 역사적 사실이 부연, 확대 재생산되며 지역민의 의식이 자연스레 녹아들게 된다. 그로 인해 그 지역민은 지역 설화를 앎으로써 유대감을 공고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설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 당장 필자의 주변만 보아도 설화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는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기관이나 시민단체 중에서도 설화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설화에는 당대를 살았던 지역민들의 애환과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때문에 설화는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에 시여할 수도 있다. 특히 지금같은 지방자치 시대에는 그 지역만의 설화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지역 홍보에 활용할 수도 있고, 스토리텔링에 걸맞는 특색있는 축제를 개최해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
설화를 허무맹랑한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지 말고, 설화에 담긴 지역색, 의미, 교훈 등을 새기면서 우리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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