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서울대의 소멸을 우려하는 글이 그 대학 신문에 실렸다. 깜짝 놀랄 일이지만, 정외과의 한 교수가 총장의 부재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걱정하면서 서울대도 소멸의 길을 갈지 모른다는 글을 쓴 것이었다. 서울대가 사라진다니 ... 엄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업 수명을 고려해 본다면 아무리 교육 분야가 백년지대계이며 기업처럼 즉각적인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무리라 하더라도 집중적·장기적 지원에도 마뜩잖은 결과를 보이는 국립대는 진작 소멸 얘기가 나왔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표들, 예컨대 세계 대학 랭킹과 노벨상 배출 실적, 교수 논문 피인용율, 졸업생의 사회기여 등을 본다면 서울대도 그 정체성과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서울대의 소멸은 그 글의 필자가 바란 대로 서울대가 설립 당시의 소명과 사회적 역할을 다하여 국민들의 박수 속에 최고의 대학으로 소멸해가는 것이다.
총장 공백사태로 지리멸렬을 걱정한 대학에 비하면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학은 새 총장이 제때에 임명되고 취임식을 치른 지 8개월이 지났다. 충북대학교의 오늘의 현실은 어떨까?
대다수의 학생과 교수들은 잘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필자의 눈에 띤 우리 대학의 단면들만 나열해 보겠다. 본업을 망각하여 학교에서 코빼기 보기 힘든 교수, 강의준비와 학생면담이 왜 필요하냐는 교수, 보직에 눈이 멀어 항상 본부를 기웃거리는 교수, 친목도모라는 미명아래 술판에는 빠지지 않는 교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외부활동에만 목을 매는 교수, 논문다운 논문은커녕 1년에 논문 1편 쓰지 않는 교수, 신임교수를 뽑을 때마다 자기 세력을 확대할 기회로 삼으려는 교수, 대학원생들과 조교에 대한 갑질이 문제인지 모르는 교수 등등 낯 뜨거운 교수들을 보았다.
학생들은 어떠한가? 강의시간 내내 대놓고 자거나 깨 있으면 톡으로 시간 보내는 학생, 교수나 수업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학생, 술값은 아깝지 않지만 책값은 아까워 복사‧제본으로 한 학기를 보내는 학생, 대학을 취업학원만큼도 여기지 않는 학생, 도서관은 뒤로 한 채 방학만 되면 학교 밖으로 사라지는 학생, 알바가 공부보다 우선이 된 학생, 한 학기 내내 몰려다니며 술 마시는 학생, 어차피 지잡대라며 노력 없이 자포자기하는 학생 등등 안타까운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요즘 대학에는 교육은 없고 수업만 있다. 교수는 있지만 학생들을 위한 스승은 없다. 청출어람할 제자는 없고 수강생만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한 몸 불태우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잔혹한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원칙과 본류는 잊혀진지 오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만이 중시되고 있다.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며 우리 학생들도 정글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사설을 쓰는 필자도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이 글을 보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너나 잘하라’며 욕할지 모르겠다. 달게 받아들이겠다. 그래도 욕먹은 김에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충북대의 정체성과 미래는 무엇일까? 엄살이라고 하더라도 서울대가 소멸을 우려하는데, 충북대는 소멸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을 지방에서 그것도 중소규모 국립대인 충북대학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충청도 양반의 모습만으로는 밀레니얼 세대 앞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들은 이제 자기 대학의 미래를 넘어 교육의 미래와 대학의 역할이라는 거대담론을 재논의해야 할 시기다.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소명을 달성하지 못한 채 소멸을 우려하는 충북대의 미래, 곧 닥쳐올 수 있다. 이제라도 냉철하게 충북대의 정체성을 판단해 보고, 정체성에 걸맞은 대내외적 역량 강화 작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는 것을 반추해보아야 한다.
충북대는 과연 소멸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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