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소주 냄새 나는 속을 게워내고 어디론가 향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내 세월은 그렇게 먼 길을 발길 닿는 대로 혼자 호기롭게 다녔던 것 같다.
나는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던 남도 끝자락 어느 외딴 동네에 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배가 무척 고팠고, 이미 해가 다 져버려 가로등 몇 개 만이 빗줄기를 비추고 있었다. 긴 논둑을 걷고 또 걸어가 끝없이 이어지는 차로 변을 한없이 걸었다.
내가 분노와 질투를 쏟아내기 위해 도착하려 했던 곳은 이미 저 멀리 보이지도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차가운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멀리 보이는 낡은 모텔을 열고 들어가 씻지도 못한 채 누웠다.
나의 첫 타지에서의 하룻밤은 그렇게 비 비린내 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TV를 켜고 허겁지겁 차가운 크림빵과 우유 한 팩을 입에 쑤셔 넣으며 나는 어쩌면, 내가 하는 모든 종류의 사랑이란, 이것과 비슷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첫 타지에서 또 하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지친 속을 아랫배 바닥부터 차곡차곡 채워주던 아주 뜨거운 바지락 칼국수다. 간판도 없는 식당에 들어갔고 곧이어 주인아주머니가 내 앞에 국수 그릇을 내놓았다.
“으따, 거 여행자인갑소. 여기 볼거 하나 읍을틴디 무하러 왔을까잉”
나이 든 주인으로부터 내가 아주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말이 왠지 어색하게 건네는 위로처럼 들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아무 대답 없이 꾸역꾸역 뜨거운 면발을 집어삼켰다. 눈물을 한소끔 끓이는 비법으로 말아낸 먼 타지의 맛이었다. 식당을 나서니 비가 그쳤다. 산언저리에 구름이 앉은 모양새가 아름다웠다. 나는 고생 중에 하나라도 아름다운 감상에 젖었다는 것이 퍽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시내버스 몇 대와 고속버스를 갈아탄 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덧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이 학교에 없을 거다. 이곳에서도 나는 수 없이 많이 고개를 수그렸고, 다른 길로 새길 반복했다. 미안한 사람을 많이 만들었고, 또 그리운 사람도 많이 만들었다. 조용하게 저벅저벅 걷고, 또 쉴 곳이 꽤 많은 이 학교에서 수년 전의 외딴 시골 마을의 향기가 느껴진 것은 왜일까.
먼 과거의 나에게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깨달은 나는 이제 그 분노와 질투마저 아쉬운 추억이라고 또다시 어리숙하게 말하고 있다. 아주 뜨거운, 비린내 나는 굵은 알맹이와 뜨거움을 제 속에 감추고 있는 긴 시간, 여러 가닥. 그런 것들이 한가득 올려진 위안을 찾으러 다시 떠난다고 해 두자. 이곳을 다시 찾아올 용기가 생겼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더 푹 삶아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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