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소위 명문대를 다니던 A 씨는 ‘스펙(SPEC)’으로 둘러싸인 한국 사회에서의 불안한 대학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했다. 그는 ‘오늘, 저는 대학을 거부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긴 대자보에서 ‘저는 기업의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대학을 버립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대자보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많은 대학생이 이를 보고 내용에 공감을 쏟아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를 알고 있는가? 그는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하는 공장 노동자로 등장해 기계시대의 인간소외를 그려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대학은 채플린이 일하던 공장처럼 똑같은 스펙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스펙공장’이 됐다. 학생들은 그렇게 일률적으로 만들어지는 스펙에 포장된 상품으로 기업의 선택을 기다린다. 나아가 조금이라도 기업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자신만의 특색있는 스펙을 별도로 쌓으려 발버둥 친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 등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스펙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하나의 부담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이 기업의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듯, 대학생들도 자신의 스펙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생들은 ‘남보다 더 앞서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으로 공모전 참여, 인턴십 등의 대외활동과 여러 종류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캠퍼스의 낭만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순수한 친목이나 취미가 아니라 ‘과연 이 활동이 자신의 이력서를 빛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잡코리아, 알바몬이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외활동을 해 본 경험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70.6%(706명)가 ‘대외활동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대외활동에 참여한 이유를 묻자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56.4%(564명)로 1위를 차지했다.
졸업을 앞둔 기자 역시, 대학을 다니면서 스펙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이 맞을까?’라는 의문이생겼다. 물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인턴, 공모전, 학점, 자격증 등 ‘스펙’이라는 굴레에 갇혀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스펙을 전혀 보지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벌이라는 스펙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앞으로 학벌, 자격증, 토익점수 등으로 수치화된 스펙보다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채용방식이 만들어지고 확산되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이 스펙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용기 내서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작은 ‘부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