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역한 지 100일정도 된 이제는 민간인이다. 군대에서의 100일은 정말 길게 느껴졌는데, 사회에서의 100일은 정말 순식간이다. 군복을 벗고 집에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개강을 앞두고 있다. 군대는 나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가는 중이다.
시간을 전역 100일 전으로 되돌려 보자. 그때의 나는 몸은 군대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사회에 있었다. 따듯함이 넘치는 집과 풋풋한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마음껏 꿈꾸고 있었다. 그렇게 내 행복은 미래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당시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답답함과 괴로움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전역을 했다. 그리고 바로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딱 3일 동안이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 복잡한 인간관계, 주변사람의 불행 등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더 늘어났다. 전역 전에는 몸은 갇혀 있었지만 마음은 자유로웠던 반면, 전역 후에는 자유로운 몸 대신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됐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항상 그랬다. 항상 이 상황만 끝나면 행복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려고 했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고민과 고통이 없는 완전한 행복은 없다. 불교에서는 우리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한다. 여덟 가지 고통인 ‘팔고(八苦)’는 모두 ‘욕심(慾心)’에서 나오는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삶이 어차피 고통이라면 허무주의나 쾌락주의가 답이 될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고통을 직면하기 두려워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한 손에 고통을 쥐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다른 한 손에는 행복이 있다.
행복 또한 항상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친구와 밥 먹고 수다 떠는 것,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 퇴근 길 아름다운 저녁 노을, 힘든 하루 끝에 누운 포근한 침대 등 이 모든 것이 행복이다. 우리는 이런 작은 행복들이 일상이 되면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오직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내일 또 볼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제 본 친구를 내일 또 본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면 된다. 그것은 딱 그 순간에만 허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조금 빨리 얻었더라면 어땠을까. 올레길을 걸으면서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찾느라, 올레길 인증 스탬프를 찾느라 혈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길가에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를 좀 더 자세히 보았을 것이다. 저녁노을이 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냥 바다에 빠졌을 것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