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는 단풍, 낙엽, 전어, 운동회…그리고 ‘독서’가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을에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왠지 가을이 되면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도 서점을 기웃거린다. 사계절 중에 왜 하필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됐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설은 날씨와 관련이 있다. 지금이야 냉.난방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계절과 관계없이 실내에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름에는 끈적끈적한 땀을 닦아내며 부채질을 하느라 독서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겨울에는 껴입은 옷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면 책을 읽고픈 마음이 싹 사라졌을 것이다. 옛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는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려고 지은 시에서 ‘등화가친(燈火可親)’, 즉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좋다”라는 말을 했다. 따라서 가을이 제격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그럼 봄은?”이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조금은(?)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 몸에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가을이 오면 분비가 적어진다고 한다. 이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지면 고독함을 느끼면서도 차분해져 독서하기에 좋은 신체적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은 과거의 생활방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추수(秋收)에 생활방식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농업사회에서 씨를 뿌리는 봄과 작물을 가꾸는 여름 농번기의 바쁨은 현대인의 바쁨과 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가을은 수확을 통해 창고에 곡식을 쌓아놓듯이 머릿속에 지식을 쌓기에도 적절한 시기였을 것이다. 일단 당장의 배고픔이 해결된 후에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지금은 문명과 생활방식의 발전으로 앞의 설들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기 위한 환경은 좋아졌지만,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책은 계절과 상관없이 가까이해야 할 친구다. 방황하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라고 한다면 책은 그런 좋은 친구다. 내가 세상에 대한 수많은 불만과 의문으로 혼란스러울 때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했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의 방황하는 모습에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받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
우리가 길을 잃고 비틀거릴 때 책은 우리가 쓰러지지 않게 잡아준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일으켜 준다. 이런 친구를 삶에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축복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책을 통해 이런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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