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우리의 주목을 끌었던 뉴스 중 하나는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즉 RCEP 협정문이 타결되었다는 것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15개국 정상은 협정문 타결을 선언하고 잔여 쟁점들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타결 및 서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협정문’의 타결이라는 것이 과연 협상 타결인가라는 논란은 있지만, RCEP 타결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비록 이번 선언에서 인도는 제외되었지만 2012년 역내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협상이 개시되었을 때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총 16개국이 참여하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RCEP은 세계 인구의 절반, 총생산과 세계 교역의 3분의 1일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공동체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RCEP에는 중국을 비롯한 농업 강대국이 포함돼 있어 농업개방 가속화와 이로 인한 국내 농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RCEP 협상의 개시, 협상 과정과 협정문 타결 등 일련의 과정 속에는 단순히 국가들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며, 국제정치 및 국내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RCEP 협정문 타결이, 나아가 국제통상 현안이 국제정치 및 국내정치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인식해야 하며,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RCEP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미국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의 일환으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추진을 주도하였다. 미국 전략의 핵심은 중국의 견제였고, 이에 RCEP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지역의 공동체 창설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해석의 핵심은 아시아 지역에서 TPP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과 RCEP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패권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RCEP이 아세안 중심이지 중국 주도는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TPP 탈퇴,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 강화에 맞서 오히려 중국이 무역 자유화를 내세우며 아시아의 경제 통합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은 RCEP 타결 소식을 애써 평가 절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미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아세안 국가 및 인도와의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남중국해 패권 추구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아세안과 인도와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견제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지난 사드 배치 논란처럼 또 다시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방향은 명확하다. 선택의 상황에 놓이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국내정치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과거 우리 정부는 미국 및 중국 등과의 FTA 협상을 추진하면서 FTA 추진을 반대하는 산업계와 갈등을 빚었던 적이 있다. 한국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FTA와 RCEP 등의 체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산업분야는 농업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 10월 25일 향후 WTO 농업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였고, RCEP에는 많은 농산물 수출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향후 농업 분야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RCEP의 국내 정치적 논의는 RCEP이 국내 소득 재분배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서 시작된다. 즉, RCEP 체결을 통해 국내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는 반면에, 경제적 손실을 보는 집단도 있다. 이익을 얻는 집단은 RCEP을 적극 지지하겠지만, 농업 분야처럼 피해를 보는 집단은 무역정책의 변화(예: RCEP 체결 철회)를 요구한다. 이러한 집단간의 경쟁이 궁극적으로 국내정치 재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피해를 보는 집단, 특히 농업 분야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RCEP을 반대하는 집단을 위한 대책 마련이 RCEP을 체결한 정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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