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발생한 ‘ㄴ 학과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은 교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막연히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우리 학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많은 학생이 충격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필자는 가해자들과 같은 과 동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과 동기일 뿐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지만, 1년간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가해자 개개인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필자에게 더 큰 환멸을 느끼게 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이번 사건이 범죄 행위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일부 여론이었다. “남자들끼리 있는데 그럴 수 있지”,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많잖아”, “한창 스무 살 청춘인데” 등등. 큰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나서서 변호하는 수많은 변명.
필자는 이 글을 빌려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다. ‘남자는 원래 여자보다 성욕이 많으니까 괜찮다’라는 말은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희롱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일부 남성의 범죄 행위를 감싸주자고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로 매도하는 꼴이다. ‘어리니까, 스무 살 청춘이니까 그럴 수 있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대체 청춘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범죄 행위를 소명하는 용도로 쓰였단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변명은 ‘청춘’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모독일뿐더러, 가해자와 같은 나이인 피해자에 대한 모독이다.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한들, 이 추악한 범죄를 소명할 수 있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는 것이 이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한 말,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더불어, 우리도 마찬가지다. 같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또 지성인으로서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부조리에 침묵하는 것은 내가 속한 학교는 물론, 사회 전체를 망치는 길이다.
박선우 작가는 <뚫린 입>이라는 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침묵은 중립이 될 수 없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