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소수를 보고 특정 집단, 혹은 개인의 전체를 너무도 쉽게 단정 지어버리곤 한다. 색안경을 쓴 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본연의 색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미 정해 놓은 관점으로 파악한 세상은 과연 그 본질의 의미를 제대로 담은 세상일까? 필자는 이렇게 편파적으로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을 감히 ‘혐오’의 일종이라 말하고 싶다. 본질은 그러지 아니할 수 있으나, 그를 마음대로 판별하는 것이 혐오가 아니면 무엇인가.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진 상황에서, 우리 주변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구·경상북도(이하 경북)에 대한 혐오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에 대한 혐오를 그 예로 제시한다.
실제로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특정 대학의 ‘에브리타임’에는 ‘대구·경북 출신 학생을 받지 말아야 한다.’, ‘대구·경북 출신 학생을 격리해야 한다.’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SNS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의 몇몇 게시글과 댓글에서도 대구·경북에 대한 혐오 섞인 발언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포털사이트 중 하나인 ‘네이버’의 실시간검색어에 ‘대구 봉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또한, 신천지의 총 회장을 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상이다’와 같은 비판이 아닌 비난도 난무하고, 31번 확진자를 단순한 한 명의 ‘확진자’가 아닌 ‘코로나19의 시발점’인 양 손가락질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게다가 31번 확진자 이후의 확진자들을 향해 ‘신천지 신도라 코로나19에 걸린 것 아니냐’라는 식의 조롱 섞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혐오는 너무도 쉽게 행해진다. 특히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SNS를 통해 이른바 ‘물타기’라고 정의할 수 있는 혐오 여론 조장 역시 팽배하다. 혐오는 주로 일종의 ‘공포감’으로부터 그 몸집을 키워간다. 아마 위의 사례들이 그러한 경우였으리라. 공포로 인한 그들의 혐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혐오로 인해 피해입은 대구.경북 지역민의 마음과 지역의 이미지, 종교의 이미지는 감히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겠는가?
혐오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돌을 던진다면 그 파괴력은 약하다. 하지만 특정 대상을 향해 여러 명이 돌을 던진다면 그 특정 대상은 여러 개의 돌을 맞고,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받게 된다.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한마디 말의 파괴력은 상상이상일 수 있다. 우리 모두 너무나 쉬운 혐오를 던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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