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5일을 기준으로 ‘n번방’과 관련해 적발된 범죄자는 340명이며 확인된 피해자는 총 165명이다. 그러나 범죄 사실에 있어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범죄가 텔레그램에서 멈추지 않고 밖으로 전파되는 중이며, 피해자의 영상이 최소 26만 회 이상 재생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진화하는 데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감히 언론이라고 말해본다. ‘빨간 마후라’ 사건 당시, 해당 비디오의 여중생은 단 한 번도 ‘피해자’로 호명되지 않았다. 또한, 2000년대에는 피해자의 이름을 딴 성관계 비디오 불법 유포 사건이 활개 쳤으나, 언론은 피해자를 감싸기보단 경쟁적으로 선정적인 중계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피해자의 실명을 1면에 보도하는 신문도 있었다. 결국 피해자인 여성 연예인 대부분은 긴 기간동안 연예계 활동을 접고 은둔해야 했다. 과연 현재라고 많이 달라졌을까? 아직도 엄연한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음란물’, ‘아동 포르노’,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명명해 2차 가해를 하는 언론이 존재한다.
더불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자세히 설명.묘사하거나, 피해자의 행적을 지적하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도 많다. 세상에 ‘피해당할 짓’이란 없다. “그러게 누가 ‘먼저’ 문란한 행동을 하라 그랬냐. 성 착취 빌미를 제공한 거 아니냐. 강간을 원했던 것 아니냐”라는 시각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이다. 이는 과거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그러게 여자가 왜 밤늦게 다니냐. 왜 짧은 치마를 입냐”라고 책임을 전가하던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자신이 작성하는 기사가 이미 피해 사실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본질을 흐른 기사로 독자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기사를 읽는 우리도 잘못된 기사에 동조하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어떤 사건이든지, 징후 없는 일어나지 않는다. ‘n번방’도 그랬다.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성 착취 이전에는 손정우의 ‘웰컴투비디오’와 승리의 ‘버닝썬’이 있었다. 그 이전엔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이, 더 이전엔 ‘소라넷’이 있었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당시 유명 여성 연예인들의 ‘성관계 비디오 유출 사건’을 거쳐,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에 닿는다. 그래서 ‘n번방’은 ‘n번째’ 참사다. 우리는 그동안 넘어간 n번째 실패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가늠할 수도 없는 n번의 디지털 성범죄를 만들고 있었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