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나는 크리스마스를 생일 다음으로 기다렸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만 놀이동산을 갈 수 있어서였는데, 생일에 가는 놀이동산과 크리스마스에 가는 놀이동산은 마치 다른 장소처럼 분위기가 달랐다. 노래로 치면 생일날의 놀이동산은 엄정화의 ‘Festival’, 크리스마스의 놀이동산은 돈 맥클린의 ‘Vincent’ 같았다.
크리스마스의 놀이동산은 금색 불빛으로 반짝거리고, 끊임없이 캐럴이 들려온다. 그곳엔 환하게 웃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리 가족도 그 속에 있었다. 내가 부모님과 오롯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날은 생일과 크리스마스뿐이었기에, 크리스마스의 놀이동산은 마치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되는 똑딱이 손난로 같은 존재였다. 안에 들어 있는 은색의 금속판을 똑딱이면 서서히 따뜻해지는 똑딱이 손난로처럼, 크리스마스의 놀이동산을 떠올리면 내 안의 똑딱이가 켜지고 마음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Vincent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태교 음악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 존 덴버 같은 올드팝 가수의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그중에서 어머니가 직접 기타를 치며 들려준 노래가 Vincent였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추운 겨울이 떠오르고 동시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그 느낌을 좋아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Vincent를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22살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새하얀 눈은 이젠 시쳇말로 그저 ‘예쁜 쓰레기’라 생각하게 되었고,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꼭 가족과 보내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Vincent를 좋아하던 아이는 점점 경쟁에 익숙해지면서 따뜻한 것보다는 차갑고 서늘한 것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누구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른이 살아가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Vincent 노래를 듣는다. 아마 내 마음속 어딘가에 아직도 따뜻함을 찾는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마도 지금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어린 시절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행복할 수 있다’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 불신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경쟁 대신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며 함께 성장할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동심을 간직한 어른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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