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심스러운 손으로 셔터를 눌러 눈앞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가두었다.
그때의 나는 사진을 찍을 줄 몰랐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리개니 셔터 스피드니 하는 것들은 나에게 귀찮고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사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총구를 겨눈 듯 커다란 사진기로 피사체를 조준하는 사람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더군다나 그것이 필름 카메라라면 더욱. 자신보다 한참은 더 늙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반짝반짝 빛이 나 보였다.
중학교 때 친구 중 하나가 비싸고 늠름한 DSLR을 샀다. 나도 괜히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인 데다, 내가 찍을 줄 아는 사진이라고는 조그만 폴더폰의 카메라로 찍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친구의 DSLR을 보면서 생겨난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은 그 꼬리를 길게 늘어뜨려 지금까지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우리 집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하나 있었다. 언제나 TV 옆 수납장에 자리를 지켰던 그 카메라는 2004년에 산 소니 디지털 카메라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에 놀랍도록 가벼운 그 디지털 카메라는 당시에는 최고의 스펙을 가진 카메라였다. 하지만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건 영 폼이 나지 않았다. 가벼운 무게 탓에 카메라가 떨어질까 밝은 회색 스트랩을 손목에 감아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조그만 모형으로 사진 찍는 시늉을 내는 기분이라 가끔은 조금 창피했다. 이름도 사이버샷이 뭐야. 쓰레기통 같은 고물 로봇이 들고 있을 법한 딱총 이름 같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정리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추억을 그 카메라로 담아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디밴드의 가수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블로그나 싸이월드에 올린 것을 보았다. 멋있잖아 이거. 그를 동경하는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옵션을 선택하는 멋쟁이들이 쓰는 물건이었다. 그때는 한창 보급형 DSLR들이 쏟아지던 시기였기에 집마다 DSLR을 하나씩 장만하곤 했다. 물론 우리 집은 여전히 사이버 샷이 TV 옆 수납장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나도 필름 카메라를 가져보고 싶었다. 모니터 속 멋쟁이들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까 조마조마한 피사체를 앞에 두고 필름을 드륵드륵 돌리며 구태여 시간을 끌어보고 싶었다. 이런 여유는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열심히 필름카메라를 검색해보았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유명하고 비싼 모델들이 전부였다. 당시의 나는 절대로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모아서 사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나는 사진을 몇 번 찍어보고는 금방 흥미를 잃어 카메라를 책상에 내팽개쳐 둘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카메라를 샀다는 사실조차 잊어먹을게 눈에 선했다. 그렇기에 (만약 살 것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싸구려 카메라가 나에게는 어울렸다.
비싼 중고 필름 카메라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토이 카메라의 존재를 발견했다. 필름을 쓰지만, 충분히 가볍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했다. 구매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몇 개의 필름과 더불어 ‘홀가’라는 이름의 토이카메라를 구매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기에 나는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책상 위에서 나를 잔뜩 기다리는, 플라스틱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저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 셔터를 누르고 싶었다. 홀가 카메라는 뷰파인더와 렌즈의 구조가 별도로 구성되어, 사진이 뷰파인더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나온다. 나는 이 점이 정말로 맘에 들었다. 정말 아날로그 그 자체라는 생각에 카메라가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다른 필름 카메라도 그렇지만, 거리에 맞춰 내가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도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사진을 현상하기 전까지 결과물을 모른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어찌 됐든 나는 그냥 그 카메라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 나는 같이 놀러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820번 버스에 올라탔다. 용인 터미널에서 22번 버스를 타면 우리 집에 가장 가까운 —집까지는 10분을 더 걸어야 하지만—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나는 그 정류장을 두 정거장 지나, 인도도 없는 저수지 옆 정류장에서 내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는 집까지 먼 거리를 걸어오며 저수지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찍었다. 그토록 바라던 대로,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필름을 드륵드륵 감았다. 그 이후의 기억은 매우 흐릿하다.
나는 조심스러운 손으로 셔터를 눌러 눈앞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가두었다.
이후에도 나는 나름 몇 번의 출사를 나갔다. 영어 학원을 갔다 돌아오는 길.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 용인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목욕탕 간판이나 놀이터, 공사장 따위를 앞에 두고 무겁지만 경쾌한 소리가 나는 셔터를 몇 번이고 눌렀다. 필름 한 롤을 다 쓰고 난 뒤, 두 번째 필름을 반쯤 썼을까. 나는 남은 두 번째 롤을 다 찍을 새를 참지 못하고 다 찍은 필름 하나를 사진관에 맡겼다.
그 이후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카메라를 서랍에 넣어두었다. 짧고도 강렬한 기간이었다. 정말로 흥미를 잃은 탓이었을까. 이유는 지금도 확실히 알 수 없다. 홀가 카메라의 찍다 만 두 번째 필름의 절반은 7년이 지나서야 다 채울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현상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찍혀있을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당연히 우리 집 강아지인 밀루가 찍혀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밀루를 찍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밀루를 카메라에 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놓고도, 현상한 첫 번째 필름의 사진들은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현상을 맡긴 다음 날,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어제 맡긴 필름을 찾기 위해 용인 시내의 사진관으로 갔다. 나도 그 인디 밴드의 가수처럼 싸이월드에 내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사진첩에 올린 나의 사진들은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사진을 확인한 나는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창피해서 올릴 수가 없었다. 사진 대부분에 내 손가락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뷰파인더와 렌즈가 구별된 카메라의 구조 때문일 터였다. 나는 내 눈앞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 콰드르페니아(Quadrophenia)는 글에 대한 애정으로 대학생들이 모인 팀입니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