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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타인의 고통
제 954 호    발행일 : 2020.11.30 

  요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3~4백 명을 넘나드는 걸 보며 지난 2월에 이어 코로나19가 다시 한번 창궐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더욱이 당시는 한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하는지라 더욱 염려된다. 엄중한 상황을 지켜보며 나부터 느슨해진 경각심을 다잡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 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19로 학교도, 복지관도, 센터도, 체육관도, 프로그램실도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순례하듯이 돌던 동네의 가게들이며 공원이며 더 이상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됐다. 이 속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의 고립된 삶을 돌보는 책임은 다시 고스란히 부모에게로, 가정으로 돌아와 버렸고, 우리는 이 속에서 참으로 오랜 기간 견디고 버텨오고 있다.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기에 견뎌온 것이다.” 이는 코로나 19 상황 속 돌봄의 공백으로 인해 발달장애인 가족의 동반자살과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추락사가 이어지자 장애인 부모들이 정부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장에서 한 부모가 낭독한 추도사의 한 대목이다.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에 감사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 K-방역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누군가에게는 배제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장애 감수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장애는 실업, 노령, 질병, 사망 등과 더불어 소득 상실과 사회 참여를 제약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위험(social risk)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고유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다른 국가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영향을 받으면서 각국의 상황에 맞게 장애에 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용해 왔다. 복지국가의 이론적 논거로써 활용되고 있는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빌리자면,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베일 속 공정의 실현 방법인 최소수혜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차등의 원칙을 적용한 ‘장애인의무고용제도’, ‘장애인의무교육제도’ 등의 장애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의 권리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OECD 회원국 중 장애지출 수준이 최하위권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의 권리는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이렇듯 장애인의 삶의 질이 낮고 장애인 정책의 수준이 낙후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측면에서 원인을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우리 사회가 장애라고 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것이 근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애는 엄연히 내 가족과 이웃과 지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그 사건이 나와 내 가족에게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 마치 이것은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 죽음이 나에게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유사하게 – 신화적 낙관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에게 사회적 위험으로서 장애 발생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는 이러한 장애 감수성의 부재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 또는 고통 감수성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장애는 차이의 정체성이라는 토대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소수자 정체성(성, 인종, 성적지향, 출신 국가와 민족 등)과 비교할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욱 낮을 뿐더러 교육, 문화, 정치 등 다차원적 배제의 경향이 강하며, 비정상이라는 가치 절하에 더해 무엇보다 손상(장애)으로 인해 일상에서의 실존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취약한 소수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애인의 열악한 삶과 장애인 정책의 낙후성은 오히려 장애인 정책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훌륭한 논거로 전용할 수 있다. 즉 장애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과 장애가 유발하는 다차원적 배제와 실존적 고통은 모든 개인이 자신을 잠재적 장애인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면 장애를 가진 개인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 마련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속에서 기술과 산업의 측면에서 뉴노멀(new normal)을 이야기하고 있다. 뉴노멀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성에도 적용한다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인간이 지녀야 할 뉴노멀의 인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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