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지난 5월 30일의 상황에서 작성됐습니다.
2017년 11월 3일 한용덕은 만년 최하위 팀인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며 3년 안에 대권을 도전하겠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그리고 첫 시즌인 2018년 한화 이글스는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고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많은 이들에게 비웃음을 샀던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2020년은 그가 다짐한 3년차가 되는 해이다. 한화 이글스는 그의 말처럼 대권 도전을 하고 있을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기나긴 부진의 수렁에 빠져있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뒤늦게 시작한 시즌의 초반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지난 시즌 2위를 달성한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용병투수 서폴드의 완봉승으로 첫 승을 달성하며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는 산뜻한 출발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괜히 이때 이겨서 이번 시즌은 다를 것이라는 헛된 희망만 심어줬다.
부끄러운 사실이라 건너뛰려고 했지만 작년 2019시즌은 9위를 기록했다. 꼴찌가 아닌 것에 위안을 얻은 시즌이지만 어쨌거나 망한 건 맞다. 사실 이때 이미 한화 이글스는 과거의 끔찍한 야구를 보여줬던 상태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한용덕 감독의 3년 운운한 그 인터뷰 때문에 올해는 일을 낼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에 빠져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 30일 현재 작년과 똑같은 순위인 9위에 안착해있다. 꼴찌는 누구냐고? 다름 아닌 SK 와이번스이다. 개막전에서 SK를 이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냥 더 못하는 유일한 팀을 어쩌다 처음에 만나서 이긴 것뿐이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한 바퀴 돌아 다시 만난 최하위인 SK와의 어제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기력한 패배였다. 아마 이번 3연전이 끝나면 두 팀 간의 순위는 서로 뒤바뀌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오늘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주말이라서 하는 생각은 아니다.
오늘의 경기는 선취점을 먼저 내며 시작하기에 어쩌면 연패를 끊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역전을 당해버렸고 점수 차는 갈수록 벌어져갔다. 정말로 장점이 없는 팀이다. 용병을 빼면 마땅한 투수도 없고 타격도 안 된다. 병살타는 25개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병살타만큼 울화가 치밀게 만드는 게 없다. SK의 20분이 넘는 긴 공격이 끝난 후 한화의 공격 이닝이 돌아왔지만 첫 타자는 초구 땅볼에 나머지는 플라이 2개로 3분 만에 끝나버렸다. 힘겨운 이닝을 끝내고 쉬러 들어간 투수는 아마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나와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거나 보자고 이 악물고 낮에 과제들을 끝내놓은 게 아니다. 지더라도 좀 아깝게 지든가, 이길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때 저녁을 밖에서 드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소파에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는 내 상태를 보고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네셨다.
“올해는 청주에 경기하러 안 오나? 한번 보러 가야지.”
예전에는 정말이었지만 이제는 빈말이다. 그리고 이런 경기력이라면 차라리 안보고 만다.
“어허, 또 지네.”
아버지는 점수를 확인하시곤 안타까운 듯이 말하셨다. 나를 이런 우울함에 빠지게 만든 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버지의 책임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한화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가던 것으로 시작해 지금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면 직접 보러간 경기가 한둘이 아닌데도 그때마다 모두 패배했다. 운도 없다 싶겠지만 그간의 이글스의 승률을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통계는 웬만해선 거짓말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해서 나를 데리고 야구장에 간 건지 내가 야구를 좋아하니 야구장에 데리고 가준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작이 어쨌건 집에서 야구를 보던 것까지 치면 야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택에 내가 지금 이런 못 볼 꼴도 챙겨보고 있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하필 이글스의 팬이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산은 이기고 있니?”
아버지는 한화가 암흑기에 돌입할 무렵 이 팀은 앞으로 넉넉히 한 10년간은 답이 없을 팀이란 것을 오랜 야구 시청으로 간파하셨는지 응원하는 팀을 갈아버리셨다. 원래 OB베어스가 빙그레 이글스보다 먼저 충청권 연고를 가졌던 팀이라는 정통성을 내세워 그 후신인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가버린 것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와서 보면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10년간 3회 우승에 포스트 시즌에는 8회 진출한 팀으로 그간 팬들에게 많은 행복을 선사한 팀이었다. 채널을 돌려보니 역시나 오늘도 두산은 이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깐 보시더니 만족한 얼굴로 방에 들어가셨다.
다시 한화 경기로 돌아오니 점수차는 더 벌어져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야구팀이냔 말이다. 한창 암흑기를 지날 때는 행복야구라면서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어쩌다 점수나면 행복해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근데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반등의 기미조차 없는 이 팀을 보면 한숨뿐이 안 나온다. 이쯤 되면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오랫동안 성과도 못내는 팀에 급여를 주고 있단 말인가. 정말 돈 주기가 아까운 팀이다. 사실 매각하려고 해도 이런 팀을 사겠다는 기업이 있을 리가 없다. 악성 채권과 다름없는 이 팀을 처리할 방법은 해체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꽤 규모가 있는 스포츠 구단이 차라리 매각을 당했지 해체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전 세계를 뒤져보면 해체한 사례도 있겠지만 나름 한 나라의 인기 스포츠 1부 리그에 속한 거대한 팀이 해체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한화 이글스가 스포츠 계에 역사를 남기는 길은 해체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결말은 적어도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충격을 선사하며 나름 명예롭게 사라지는 길일 것이다.
9회가 되고 한화는 마지막 공격에 나선다. 루상에 주자가 쌓이며 괜히 이러다 역전하는 것 아닌가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은퇴하지 않고 후배 앞길 막고 있는 어떤 타자는 눈을 감고 타석에 임하는지 스트라이크 존을 무척이나 벗어난 똥볼에 힘만 잔뜩 실린 헛스윙을 하며 삼진을 당하고 허무하게 경기는 끝이 난다. 그래도 내 마음은 평온하다. 늘상 있는 패턴이다.
이글스라는 존재를 차라리 몰랐다면 좋겠다. 그럼 이런 고통을 굳이 겪을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이글스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아니면 야구가 사라진 세상으로 가고 싶다. 다른 팀의 팬을 할 바엔 야구가 없는 게 나으니까. 중계방송이 끝날 무렵 내일의 선발 투수가 소개된다. 용병이다. 어쩌면 내일은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만 더 속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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