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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는 이미 선진국였다
제 955 호    발행일 : 2021.03.02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로 ‘선진국’이 있다. 국가도 후진국-중진국-선진국이란 순위가 있고,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오랜 꿈이다. 그런데 선진국 진입을 바라는 우리를 위협하는 현상이 등장했었으니 바로 ‘중진국 함정’이다. 중진국 함정이란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발전보고서>에서 처음 제기한 경제 용어로 빠른 경제성장으로 중진국에 진입한 국가가 성장력을 상실하고 다시 후진국으로 후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후 우리나라도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걱정들이 나왔고, 그 걱정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어리둥절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선 우리 문화가 이 정도였나 할 정도로 세계인이 환호하고 있다. 드라마 수출로 시작한 한류는 K팝과 영화로 이어졌고, 일본과 중국,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휩쓸고 있다. BTS의 빌보드 차트 1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2019년 8월 일본 아베 정부의 도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도 우리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오래전부터 많은 기성세대는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일본에 비해 20년 뒤져있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었다. 그래서인지 한일 경제전쟁 초기에는 일본에 머리를 숙이더라도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자발적인 일본 불매운동은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이 급감하면서 일본 국내 경기 침체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큰 피해가 예상됐던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더욱 성장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규제가 일본 소재산업에 피해만 줬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꺼낸 일본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라는 도끼에 일본의 발등이 찍힌 샘이다.
  또 1년이 지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정부의 방역과 국민의 대응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했다. 일부 이견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면적인 락다운(외출 제한 및 상점들의 영업 중단 조치) 없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무엇보다 OECD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에서도 2020년 우리의 경제성장률(-1.0%)은 15개 주요국 가운데 중국(2.3%)과 노르웨이(-0.8%)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숫자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동안 우리가 부러워했던 선진국을 우리가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사실만으로 분명하다.
  그 밖에도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와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이 놀라는 우리의 모습도 많다. 빠르고 편리한 대중교통, 어디서나 가능한 무료 인터넷(와이파이), 주문만 하면 무엇이든 집까지 가져다주는 배달과 택배, 식당에서 추가 비용 없이 무한 리필 되는 반찬 등은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의 눈엔 놀라움이었다. 무엇보다 카페에서 값비싼 소지품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집 대문 앞에 택배 물건을 두어도 훔쳐가지 없는 신뢰가 가득한 우리의 모습에 그들은 경의를 표한다.
  ‘선진국’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나라보다 정치.경제.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이다. 뜻하지 않은 고난이 우리가 이미 선진국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이젠 우리는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던 국가의 문물과 기술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모방하고 배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젠 우리가 누군가의 부러움이고, 모범이며,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젠 모방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가 창조해야만 한다. 우린 이미 선진국이라는 자긍심과 함께 지금까지 당연시했던 가치관.제도.정책 등 우리 사회 전반을 되짚고, 선진국에 맞는 패러다임 변환을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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