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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생(寄生)에서 공생(共生)으로
제 958 호    발행일 : 2021.05.31 


  미국의 사학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은 그의 저서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에서 미생물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에서 먹이를 구하는 생물을 ‘미시기생 생물’로, 인간이나 육식동물처럼 복속시킨 공동체로부터 수확물을 수탈하여 생명을 유지하거나 숙주의 생명을 먹이로 살아가는 동물을 ‘거시기생 생물’이라 칭했다.
  미시기생 생물이 숙주의 몸을 빌어 그 생명과 유전자를 보전하듯이, 인간이라는 거시기생 생물은 착취와 수탈을 통해 문명을 유지하고 보존해 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미시 및 거시기생 생물들은 서로가 기생체와 숙주가 되어 서로의 정상적인 활동력을 현저히 감소시키지 않는 생물학적 균형을 통해 지금껏 생명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인간의 거시기생 사회에서 미시기생 생물에 의해 감염되어 신체적 장애를 가지게 된 인간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을 더는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즉, 거시기생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기생생물에 감염되어 신체적 장애을 가지게 된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 질병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가 질병의 개념이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결국, 인간은 인간 사회라는 거시기생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질병을 구분해내고 이로부터 인간을 지키려 한 것이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세계적인 대유행, 이른바 팬데믹 상황을 초래했다. 미시기생 생물에 의한 팬데믹 상황은 인류의 거시기생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했다. 발달 된 복잡한 산업구조로 인해 착취와 수탈이라는 구조적 특징이 모호해진 가운데 나타난 팬데믹은 이 구조적 특징을 도드라지게 만들며 균열을 초래했다.
  초기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의 부족은 이내 부유국과 빈곤국과의 관계 즉, 기생체와 숙주의 생태적 균형에 균열을 초래했다. 부유국은 마스크 생산기업에 웃돈을 주며 선점하기 시작했고, 빈곤국의 국민은 온갖 것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이후 백신이 생산돼 공급되기 시작하자 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유한 국가들은 전 국민이 맞고도 남을 양을 계약하고도 먼저 공급받기 위해 제약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빈곤한 국가들은 수없이 죽어가는 국민을 바라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을 구입해 자국민에게 맞힐 능력이 없는 나라는 92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7개국 정부는 코로나19의 예방과 억제 및 치료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의료제품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일시적으로 유예할 것을 제안했으나, 일부 부유국들에 의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 재산권의 일시 유예에 지지 표명을 하고 있지만, 현실화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백신은 공공재이어야 한다. 일개 국가의 국민이 공유하는 공공재가 아닌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하는 국제적 공공재여야 한다. 한국은 우수한 제조역량을 가진 부유한 국가 중의 하나다. 비록 현재 국내의 백신 수급 상황이 원활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상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나아질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성숙한 국민 의식이 발현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야 한다.
  기생이 아닌 공생의 인간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 재산권 유예에 우리 정부는 명확히 입장을 밝히고, 우리의 우수한 제조역량을 통해 글로벌 백신 허브로서의 선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구조가 인간 상호 간의 기생적 구조라면,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숙주와 기생체가 함께 살아가는 생물학적 균형, 아니 국제사회적 균형을 이뤄 새로운 공생적 구조로 탈바꿈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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