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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꼰대가 꼰대에게
제 961 호    발행일 : 2021.11.08 

  ‘꼰대’. 나 때는 ‘선생님’이나 ‘아버지’를 속되게 부르던 말이었는데, 요즘은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일삼는 나이 많은 사람이 ‘꼰대’다. 나는 나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라떼’를 연발한다. 그래서 ‘나도 별수 없는 꼰대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얼마 전 내가 나고 자란 시골집이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사하게 됐다. 그 오래된 집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다락방에서 아주 큰 상자 3개에 담긴 무언가가 나왔다. 확인해 보니 다 내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교과서와 참고서, 대학 때 썼던 노트, 논문, 내가 참여 해 만든 소식지, 시라고 끄적여 놓은 노트, 군에서 복무할 때 만든 업무 파일 등등 이었다. 무엇보다 친구, 선후배와 주고받은 한 뭉치의 편지도 나왔다. 내 젊은 시절이 담긴 유물을 보며 한참을 추억에 잠겼다. 손때와 메모로 빼곡한 교과서와 참고서, 손글씨로 가득 채운 노트와 두툼한 업무 파일을 보면서 ‘나 참 열심히 살았었네’라는 뿌듯함도 몰려왔다. 그렇게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있다가 결국은 유물 일부는 태우고, 나머지는 분리수거했다.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상자 3개의 추억은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나는 행복했나?’ 답은 너무도 쉽게 ‘아니’였다. 물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젊음이 그렇듯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의(?)에 대한 객기로 가득했던 때였다. 오히려 그 시절을 추억하는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행복하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라떼’를 연발하는 꼰대의 한 사람으로 행복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를 뭐 그리 자랑스럽게 말했단 말인가. 꼰대인 나는 그들에게 ‘나 때는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열심히 살았어. 그러니 너도 나약한 소리 말고, 불행해도 참고 견디며 살아. 그럼 지금의 나처럼 될 수 있어’라고 잘 난 척하며 불행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 결국은 이 꼰대가 뱉은 말은 아무리 포장해도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뎌라’였다.
  또래인 꼰대 친구를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요즘 애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해’이다. 그러면서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내 주위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 난리야’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 나약해서 편한 일만 하려고 하니 취업난이지’라고 결론 짓는다. 꼰대인 우리 생각엔 백번 맞는 말이다. 근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나약하다’라고 하는 요즘 애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어떤 일인지.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주말도 반납해야 하는 일, 회사만 있고 개인의 삶은 없는 일, 늘 만성 피로에 찌들어 살아야 하는 일, 목숨 걸고 일하지만 산재 보상도 제대로 못 받는 일, 일의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은 일, 갑질에 시달리며 인간적 모멸감을 감내해야 하는 일, 언제 해고될지 몰라 늘 불안한 일, 평생 일해도 삶이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 등등이다. 꼰대인 우리가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사회는 원래 그런 거라고 묵묵히 참아내며 해온 일들이 대부분 이런 일들이지 않은가.
  아이들을 훈계할 때 흔히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고통을 참고 견디면 좋은 시절이 온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아무리 견뎌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도 있다. 꼰대가 될 만큼 살았다면 이런 삶의 쓴맛은 한 번쯤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라고 하지 말자. 꼰대가 된 우리가 살아오며 맛본 인생의 쓴맛을 요즘 애들은 벌써 맛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쓴맛이 만연한 세상이 되도록 방관하고 침묵한 꼰대로서 미안한 마음을 갖자. 내 젊은 시절을 기준으로 젊은이들을 재단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공감해줄 때 우리는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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