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뉴스는 대선 후보들의 행보와 그들을 둘러싼 이슈로 연일 시끄럽다. 언론사도 자기만의 입장을 가진 정치 행위자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국민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나마 정치에 관심을 둔 국민은 자신의 성향이 너무나 확고해 ‘확증 편향’에 빠진 경우가 대다수다. 잘 알다시피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으로 흔히 자신이 보수 혹은 진보 지지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문제는 확증 편향에 빠지면 나와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모두 악(惡)으로 보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인식하게 해 나의 정치적 견해와 반대편에 선 정치인을 혐오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만들며, 특정 정치 세력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 혹은 혐오로 이어진다. 그리고 역사가 입증하듯 이런 현상이 보편화 되면 이를 이용한 전체주의와 독재자가 발호하게 된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너무 나간 걱정일 수 있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카테고리를 이용해 혐오와 대결을 부추기는 여러 정치 행위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좌우 날개처럼 함께 존재할 때, 우리 사회에 더 큰 이익을 준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기에, 끊임없이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 개선의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세력 간의 논쟁은 불필요한 정쟁(政爭)이 아니라, 최선의 개선책을 찾는 발전적 과정이다.
보수는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을 두려워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적 태도’에 기반한다. 정치사적으로 보수는 시민계급의 자유주의에 대립한 귀족계급의 봉건주의에서 출발해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에 맞서는 시장자유주의로 변화했다. 즉 보수는 현 제도를 보존하려는 집단이 현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에 대해 가지는 특수한 관계가 반영된 정치적 이념으로 주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런데 보수가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우수한 제도를 보존한다는 윤리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우수한 제도에 대한 보수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그 사회의 보편 도덕이다. 따라서 진정한 보수는 그 사회의 보편 도덕에서 벗어나는 제도의 개혁에는 동의한다.
반면 진보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변화를 추구하며 낡은 것을 버리려는 인간의 심리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정치사적으로 진보는 귀족계급의 봉건주의에 대립한 시민계급의 자유주의에서 출발해 노동계급의 사회주의로 변화했다. 보수처럼 진보도 현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이 현 제도를 보존하려는 집단에 대해서 가지는 특수한 관계가 반영된 정치적 입장이다. 진보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할 새로운 제도를 제시해야 하므로 보수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며, 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런 보수와 진보는 각자 사회 전체가 아닌 일부를 대변하므로 양쪽이 제시한 정책을 놓고 서로 논쟁하며 각자의 오류가 수정될 때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책이 나온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교과서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교과서의 정의를 기준으로 보면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정치인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선과 악의 진영 논리가 아닌 나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 투표해야 한다. 모든 사상과 이념의 의미는 인간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 할 수 있느냐에 있으므로, 맹목적으로 특정 이념이나 진영을 지지하거나 혐오하기 보다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줄 수 있는 정치인과 정치 세력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합리적인 유권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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