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가 피어도 너무 피었다. 매화는 흐드러지게 깊은 산골을 향기로 가득 채운다. 눈구름이 하늘을 뿌옇게 만들고, 산등성이의 옹기종기 바위들은 설인처럼 눈을 뒤집어썼다. 매화 향기 가득한 방 안에는 고개를 들어 친구를 떠올리는 선비가 있다. 그 공간으로 붉은 옷을 입은 손님 하나가 거문고를 메고 간다.
동양의 산수화를 보고 있노라면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언제나 엄마의 품같은 포근함을 선사한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웅장한 느낌을 주는 산수화라면, 이 <매화초옥도>는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비록 겨울 산이지만, 마음 한켠에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른다.
지음(知音),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고사성어다. 춘추 시대에 살았던 백아는 거문고를 매우 잘 탔고, 그의 벗 종자기는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 곡을 듣고 백아의 마음을 알아채곤 했다. <매화초옥도>는 그런 둘의 관계를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헤아려주는 친구. 그 친구를 떠올리자니 그림의 녹색 옷을 입고 집안에 앉은 사람처럼 고개가 절로 위를 향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나의 과도기였다. 자폐를 앓는 내 장애인 형을 주변 사람에게 들켜 조롱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시절.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완벽한 사람이길 강요받던 시절. 너무 힘들었다. 그런 내게 내 친구는 “너한테 냄새나”라고 했다. 그 친구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괜히 우울해 보이는 나에게 기분을 풀어주려 거는 장난이라 여겼다. 나는 씻고 왔으니 괜히 시비 걸지 말라며 친구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친구는 “네 감정에서 냄새나. 네 감정이 썩어서 냄새난다고. 얼마나 감정을 묵히고 쌓아뒀길래 감정이 썩었냐? 별로 시비 걸고 싶지는 않은데 나한테까지 냄새 풍기지 마라. 네가 처리하든지 아니면 나한테 버리든지”라고 말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의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음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였을까? 사실 눈물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그림의 두 벗은 각자의 거문고와 피리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생각에 거문고를 맨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고, 집안의 사람은 친구를 떠올린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을 알아주던 오래전 그 친구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코로나19의 위협이 지속되면서 친구와 보냈던 일상, 그리고 친구와 함께 갔던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떨어지는 낙엽은 겨울의 도래를 알리지만, 나는 친구를 맞이할 마음의 봄을 기다린다. 오늘은 그 친구에게 연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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