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말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패트릭 헨리가 1775년 3월 개최된 민중대회에서 영국과의 개전을 주장하며 한 연설의 마지막 문구다. 그는 미국인의 동의 없이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영국의 폭정에서 벗어나 미국이 자유로워지길 원했다. 그는 자유는 목숨보다 소중하니 전쟁을 해서라도 쟁취하자고 했다.
실제로 인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참 많은 피를 흘렸고, 지금도 흘리고 있다. 봉건영주와 군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혁명,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한 피식민지인의 독립운동, 침략자로부터 조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 독재정권의 폭정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 투쟁의 역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유가 무엇이기에 그 많은 사람이 기꺼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할까? 단순한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인류에게 자유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가 많은 논의와 고찰을 통해 자유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심오함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자유’는 정치 용어로 즐겨 사용된다.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무엇무엇의 자유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고,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체제를 지칭하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주의도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처럼 장황하게 자유를 설명한 이유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자유’에 대해 겉치레 없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란 뜻인데, 자유주의는 17~18세기 유럽의 시민계급에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이다. 여기서 시민계급이란 봉건사회의 농노에서 해방돼 도시에서 상공업활동에 종사하며 부를 쌓은 상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왕에게 세금을 바치며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에 이바지했고, 왕들은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이들의 상업활동을 도왔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왕의 사치는 시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강요했고, 왕은 상업활동에 간섭하려 했다. 이에 시민들은 상업활동의 자유, 왕의 무거운 세금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고, 이것이 근대 시민혁명으로 발전했다. 상업활동으로 자본을 축적한 시민계급은 산업혁명과 함께 산업자본가로 성장했고, 시장에서 자신의 이익 활동에 더 많은 자유를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산업자본가에게 주어진 자유가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만들고, 주기적인 경제불황과 대공황을 초래하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됐고, 복지 개념이 등장했다. 결국, 자본가에게 주어진 시장의 자유가 침해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970년대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과 시장의 자유를 어떤 선에서 조율해야 하는가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가 됐고, 여기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조를 자유시장주의라 부른다.
그래서 자유시장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자본가, 기업, 재벌이 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할 자유를 보장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자유의 크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 재화가 분배되는 체제에 사는 우리에겐 더 그렇다.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형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 부자와 가난한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능력은 같을 수 없으며, 능력의 차이로 경쟁에서 진 개인의 자유는 제한받는다. 우리는 ‘자유’에서 사람의 냄새가 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의 ‘자유’는 경쟁이며 능력 있는 자의 승리를 보장하는 도구다. 그러므로 자유시장주의의 자유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는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자유’이다. 그래도 필자의 이런 ‘자유에 대한 이해’가 ‘자유에 대한 오해’였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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