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모두에게 따듯하고 친절한 계절이다. 초목과 꽃들이 피어나고 훈풍(薰風)이 불어오는 설레는 계절. 예전엔 봄이 참 좋았다. 기분 좋은 따듯한 물속에 들어와 앉은 듯이 붕 뜬 기분. 그런데 최근 나는 그런 봄에서 어떤 슬픔을 볼 때가 있었다. 그건 단순히 애인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와 무상(無常)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많은 것이 생명으로 꿈틀대는 이 봄에 역설적으로 나는 역변과 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의 ‘As It Was’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4월 1일 싱글앨범으로 발매된 이 노래는 해외 유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남자 솔로 가수 최단 기간 스트리밍 1억 회를 달성했다. 빌보드 차트와 영국 UK차트에서 가볍게 1위를 차지한 이 곡의 분위기는 멜로디와 템포가 전체적으로 아하(A-Ha)의 세기의 명곡 ‘Take on Me’를 떠오르게 한다. 노래 제목은 직역하면 ‘그랬던 것처럼’ 정도가 된다. 그런데 가사가 자못 우울하다. 세상에 단 둘뿐이라는 가사나, 마약이라도 하는 건지 묻는 지인의 전화, 결국 남는 건 나 혼자라는 둥…. 해리는 이 노래 안에서 자신의 우울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숨길 여유가 없거나. 노래는 물론 헤어진 전 연인 정도를 떠올리며 쓴 것이겠지만, 나는 이 속에서 우리네 인생을 보았다.
사람은 모두 영원함을 꿈꾼다. 영원한 명예, 영원한 부, 영원한 사랑 등등. 하지만 우리는 영원함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계절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또 사랑도 변한다. 부와 지위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만이 영원한 걸지도 모른다.
다시 노래로 돌아와 두 아이와 미국을 떠났다는 내용은 아마도 10살 연상인 그의 전 애인이었던 올리비아 와일드(Olivia Wilde)를 염두에 두고 쓴 가사 같다. 떠나버린 애인을 떠올릴 때 인간은 한없이 추해지기도 한다. 울고불고 며칠을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할 때도 있다. 사랑이 두 우주의 충돌 혹은 만남처럼 다채롭고 열정적이라면, 헤어짐은 그 우주의 절반이 핑거스냅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 둘 역시, 한때는 영원을 꿈꿨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양초가 다 타버릴 때까지, 혹은 좀 더 진부한 ‘하늘만큼 땅만큼’. 서로에게 깊어질 때마다 더더욱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바다, 그 밑바닥을 봤을 때, 위기는 찾아온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한 한쪽은 결국 참아왔던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해리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우리에게 노래한다. ‘As It Was’, 그랬던 것처럼. 너와 내가 우리였던 시간, 서로의 바다가 한없이 뒤섞이던 그때, 바다가 바다가 아니라 자유로운 저 하늘과도 같았던 바로 그때. 그랬던 것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해리는 우리에게 힘없는 웃음을 지어주고 있다. 그 웃음 속엔 슬픔뿐만 아니라 허탈, 무력, 체념이 들어있다.
사랑의 종말을 통해 촉발된 감정들이지만, 이는 우리의 찰나 같은 삶과 큰 연관이 있다. 떨어지는 벚꽃잎, 공연이 끝난 후의 텅 빈 무대, 고민으로 지새우는 밤, 사람이 찢겨나가는 전쟁터. 이젠 어리지 않은 우리에게 매일 제동 거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 설계의 근본적인 오류로부터 사회가 강요하는 온갖 부조리까지, 우리는 말 그대로 인생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다. 그 도중에 좌절이나 포기가 계속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좌절과 우울은 큰 벽으로 다가온다. 너무도 높은 큰 벽. 그 엄청난 모습에 차마 올려 볼 생각도 못한다. 마치 인생의 엄청난 것을 잃어버린 듯이 마음이 오열해버릴 때가 있다. 반면 어떤 이는 이런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업신여기지도 않고, 과몰입하지도 않고, 딱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마음의 위장에서 그것을 흡수해 천천히 소화 시킨다. 우울, 좌절, 불안, 실패감은 행복, 긍지, 벅참, 고양감과 같이 순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우주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회의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인간은 정말로 티끌처럼 미약한 존재라는 것은 변함없다. 그러니 힘을 좀 빼자. 몸에 힘을 빼야 깊은 고뇌의 바다에서 떠오를 수 있다. 슬픔이 찾아올 수도 있고, 우울에 젖을 수도 있다. 뭐 어떤가.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세상이 모질게 느껴지고 주변 모든 것이 날 노려보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숨을 들이쉬며 가만히 눈을 감아보자.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걱정의 80%는 부풀려진 것일 때가 많다고 한다. 해리는 그런 우리에게 그저 잘 자라고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래는 ‘잘 자라고 해주고 싶다’는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로 시작한다. 순수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그저 맘 편히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잠들면 된다. 그랬던 옛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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