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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트로이목마는 여전히 건재하다
제 965 호    발행일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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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립을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한다. 중립이란 무엇일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의 입장에 서는 것?’ 그렇다면 예를 들어 보자. 일제강점기에 한 조선인이 우리가 일본 통치하에 있는 상태가 부당하다고 말했을 때 혹은 독재 체제하에서 독재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이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이들에게 중립을 지키라고 말한다면 중립을 지키라는 것은 곧 일본의 지배에 대해 일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이며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독재 체제에서도 중립을 지키라는 것 역시 독재 상태를 어느 정도 수용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반대의 시선에서 사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시대적 상황에 비추었을 때 불합리한 현실에서 외치는 중립은 그저 위선에 불과하고,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로밖에 치부할 수 없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수도권 지하철에서 시위 중인 장애인 시위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들에게 중립을 지키라고, 비장애인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라는 말은 아예 앞으로도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며 생존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 형 역시 자폐를 앓는 발달장애 1급인 장애인이며 이모부도 휠체어를 타신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세상에 만연하고, 그들을 보는 시선 또한 숨 막힐 정도로 따갑다. 과거 나는 ‘장애인의 동생’으로, 형이 동급생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형과 똑같이 될까 봐 무서웠다. 두려웠다. 형이 받는 사회적 차별과 시선을 똑같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형을 부정했고, 내 주변에서 형에게 일어나는 모든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을 참고 묵인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무렵, 일이 터졌다. 같은 반 친구와 학원이 끝나고 걸어가는 길에 형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밖에서 나 봐도 절대 아는 척 하지마” 내가 형에게 신신당부한 말이었다. 형은 나를 봤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내 곁을 지나갔고, 같이 걸어가는 친구 입에서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쟤 진짜 병신같이 생겼다” 집으로 오는 길에 펑펑 울며 나의 잘못을 되새겼다. 밤새도록 울었다. 만약 내가 형을 부정하지 않았더라면 형이 욕먹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수백 번을 되뇌며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동안 형이 받았을 아픔과 장애가 있는 모든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인이 장애인을 힐난하며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이 사회에서 말이다.
  역사는 이를 방증한다. 10년 동안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잘 버텨냈던 트로이가 한 방에 무너진 이유는 오디세우스의 작전이었던 ‘트로이목마’때문이다. 트로이인들이 처음 목마를 경계할 때 나타난 그리스의 패잔병인 ‘시돈’은 “전쟁에 지친 그리스 연합군은 고향으로 뿔뿔이 돌아갔습니다. 목마는 그리스인들이 무사 귀향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아테네 여신에게 바친 제물입니다. 목마를 도성 안으로 들인 뒤 경의를 표한다면 트로이는 여신의 가호를 받아 강성해지고 번영을 누릴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트로이의 예언자 라오콘은 “그리스군은 그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수상하다. 뭔가 음모가 있다. 목마를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트로이인들은 그의 날 선 경고보다 그리스인의 말에 더 솔깃했다. 게다가 바다에서 괴물이 나타나 라오콘과 그의 자식들을 죽이자 사람들은 그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신들의 벌을 받았다고 쉽게 믿어 버렸다.
  트로이의 또 다른 예언자인 카산드라도 아폴론에게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지만, 아폴론을 배신한 바람에 그녀의 예언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벌을 받았다. 그녀의 말은 항상 진실하지만, 그녀의 말은 모두가 허황된 거짓이라고 외면하며 믿어주지 않았다. 트로이인들이 라오콘의 경고를 무시한 채 목마를 안으로 끌고 왔을 때 카산드라는 이미 재앙의 전조임을 알았으나 트로이인들의 귀는 꽉 막혀있었다. 그들은 마치 무슨 보물을 얻은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도취했다. 결국 트로이인들이 전쟁의 승리를 만끽하여 술에 취해 잠들 무렵, 제물이라던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 병사들은 매복해있던 그리스군에게 신호를 보냈고 단숨에 쳐들어온 그리스군에 의해 무방비 상태의 트로이는 멸망한다.
  이는 과거의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도 달콤한 번영의 감언이설에 현혹돼 얼마나 많은 트로이목마를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 혼란과 위기를 초래했던가. 그것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깨어 있는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억압했던가.
  우리 시대의 트로이목마는 사람들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혐오이며 구분 짓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서로 간의 배려와 공감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지 모른다. 자신은 차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며 사각지대에 몰아넣고 차별을 받아들이라 강요한다. 그 차별이 언젠가 자신을 향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트로이목마의 유혹에 휘둘려 이를 경계하라는 각성의 목소리를 죽이고 우리 시대의 라오콘과 카산드라를 또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음에도 운명을 받아들인 카산드라처럼 비록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내 양심과 신념에 비춰 옳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해나갈 것이다. 설령 그것이 운명일지라도.

선배    2022-05-18 20: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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