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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학은 여전히 대학이다
제 966 호    발행일 : 2022.05.30 

  얼마 전 필자는 한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기사는 지난 5월 13일 입력된 <한국일보>의 “서울대 학생들 전장연 강연 반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는 출근길 불법 지하철 점거 시위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5월 18일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 ‘장애 인권, 시혜에서 권리로’를 주제로 강연을 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스누라이프 등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교내 공익법률센터에 전장연 박경석 초청강연? 실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시민단체 대표를 초청한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는 등 비판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누라이프’는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 교원 등이 서울대 이메일 인증을 거쳐 가입해야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대학 서열 1위라는 곳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진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우리 대학이, 우리 수준이 이렇게까지 천박해졌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선동에 동조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논란으로 보도될 정도란 말인가? 가난을 모르고, 차별을 모르고, 경쟁에 뒤진 자의 설움을 모르는 사람 중에는 소외된 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역사적으로 우리의 대학은 위정자와 기득권을 견제하며, 약자의 편에서 역사의 발전을 견인했다. 왕조였던 조선에서도 성균관 유생들은 왕과 조정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일종의 동맹휴업인 권당(捲堂)으로 시위를 벌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대학의 역할은 더 대단했다. 4.19혁명에서 대학생들과 대학 교수단의 동참은 이승만의 대통령 하야를 이끈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군사독재정권과 싸운 대학생들의 투쟁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투쟁의 역사 속에서 대학생들은 나 자신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보았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약자의 편에서 싸웠다.
  그랬던 속칭 ‘민주화 세대’가 기성세대가 된 지금, 대학은 ‘우리’보다는 ‘내’가 우선인 곳이다. 입학부터 취업의 압박에 짓눌린 학생들에게 대학의 낭만은 사치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온갖 사교육에 내몰리며 남들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살아왔기에, 부모의 재력이 사교육의 질을 결정하고 그것이 경쟁력이 되는 불공정한 사회를 살아왔기에, 노력하지 않아도 척척 취업이 되는 금수저의 특권을 보며 일찍부터 좌절을 맛보았기에, 경쟁에서 탈락하면 부모 세대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세대이기에 그들은 ‘우리’보다 ‘내’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약자에게 관심을 둘 여유 따위는 없다. 나에게 불편을 준다면 그들의 불법 시위는 범법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5월 18일 입력된 <오마이뉴스>의 “전장연 대표 서울대 강연 논란? 반대 목소리 없었다”라는 제목의 보도로는 박경석 대표의 강연은 큰 호응 속에 진행됐고, 강연을 반대하는 시위나 집회는 없었다. 더불어 논란을 일으킨 스누라이프의 게시물은 “교내 공익법률센터 전장연 박경석 초청 강연 실화?”라는 제목으로 올린 익명의 글과 그 글에 달린 십여 개의 익명의 댓글이 실체였다고 한다.
  부끄럽다. 침소봉대(針小棒大)한 언론 보도에 속은 내가 부끄럽고, 나 때와 다르다며 지금의 대학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게 부끄럽다. 무엇보다 기성세대로서 낭만이 사라진 대학을 다니게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청년은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버릇이 없다.’ 그리고 그 ‘버릇없음’이 청년의 특권이자,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다. 안될 이유가 많은 기성세대에게 버릇없이 대드는 청년이 역사를 발전시킨다. 그런 청년, 대학생이 있기에 대학은 여전히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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