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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보다> 천륜은 저버릴 수 없다
제 966 호    발행일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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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가족>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가족’으로 번역됐지만, 원제는 ‘좀도둑 가족’이다. 영화는 ‘오사무’가 ‘쇼타’와 함께 마트에서 좀도둑질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파친코 주차장에 버려졌던 ‘쇼타’,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던 ‘유리’,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죽이고 내연남인 ‘오사무’와 함께 살게 된 ‘노부요’. 가출한 후 술집에서 일하는 ‘아키’, 그리고 자식들에게 버려져 독거노인이 된 ‘하츠에’. 그들은 같이 살게 되지만,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고, 미래를 공유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하츠에의 집과 연금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연금을 받기 위해 가족의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뉴스를 듣고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가족조차 물질적 관계로 변한 사회에 대해 감독은 뭐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물질적인 면모는 오롯히 드러난다. 하츠에의 연금을 노리는 오사무와 노부요의 대화, 오사무가 일용직 노동현장에서 다치자 산재처리가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갑작스러운 하츠에의 죽음에 연금을 받기 위해 시체를 유기하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에서 이 가족 역시 ‘돈’으로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에서는 쇼타에게 ‘아빠’라고 불리고 싶었던 오사무와 ‘쇼타’와 ‘유리’가 비록 몸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여겼던 노부요에게서 영화는 우리에게 ‘혈연이 아닌 사람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단연 ‘NO’라고 말한다. 유명 연예인의 사망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보험금에서도 수령인은 ‘혈연관계로 이뤄진 가족’이다. 자식을 버리고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법은 곁에 있는 사람보다 피가 섞인 관계를 더욱 중요시한다. 이러한 사건 때문에 ‘구하라법’이라는 법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통과되지 못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드라마로 <내 딸 서영이>가 있다. 드라마는 아버지의 도박 빚으로 힘들게 서영이와 동생을 키우던 엄마가 과로로 죽자 아버지는 뒤늦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만 서영이는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있는 아버지와 동생을 죽었다고 말하며 부잣집에 시집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드라마는 형을 부정하고, 외동이라 거짓말하며 살았던 나의 과거와 너무도 닮았다. 몰래 서영이 남편의 목숨을 구해준 서영이 아버지처럼 내 형은 고3인 나를 위해 밤마다 내 학습지를 가져가서 노트에 내용을 옮겨 적어주었다. 그리고 노트에 ‘수능 파이팅’이라고 적어준 형이 얼마나 나를 생각했는지, 형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서영이처럼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다. 아무리 미워도,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피는 못속인다’라는 말처럼 가족은 결코 속일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간간이 들리는 가십성 보도들을 보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가족에게 금전적으로 착취 당해 가족과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한 연예인의 사연은 영화 <어느 가족>처럼 오히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절대적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가 핏줄보다 낫다는 영화의 메세지처럼 말이다.
  대중 매체는 가족의 형태는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도리어 가족의 형태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과 ‘유대’ 관계로 결속되어 있는 집단에 대해 ‘가족’이라는 속성을 부여하면 진짜 가족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천륜은 말 그대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으니 나도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내 가족과 나를 망가뜨린다.

ㅇㅇ    2022-06-02 06:34:57  
앞으로 어디서 어떤 글을 쓰게 되더라도 항상 이성현 기자님만의 소신 있는 글 써주실 거라 믿습니다~ 참기자 이성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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