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무뎌지면서 지난여름 극장가에는 주목할 만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했다. 그중 필자의 눈에 든 것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 <한산>이었다.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명량>을 나름 흥미롭게 본 터라 일부러 시간을 내 극장을 찾았다. <명량>과 다른 배우들이 출연해 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감독이 같아서인지 <명량> 때처럼 몰입해 영화를 즐겼다. 영화는 의(義)를 상징하는 이순신과 불의(不義)를 상징하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대결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선악이 명확한 구조로 당연히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악당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보다 더 악당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원균’이다.
영화 <한산> 속 원균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전략회의 때마다 이순신의 전략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대책 없이 용감한 의견만 고집하더니, 한산대첩에서는 겁에 질려 화약과 탄환을 의미 없이 낭비해 조선 연합 수군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이었다. 물론 영화적 상상이 더해져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실제 역사 속 원균도 우리에게 그리 유쾌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도, 역사 속 원균은 아주 몹쓸 최악의 말종은 아녔던 것 같다. 수군 지휘관이 되기 전 원균은 육군으로서 북방 여진족 토벌에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승진한 기록이 있고, 일본의 침공에 대비할 남방 방어 책임자 중 하나로 선택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나름 무관으로서 능력이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수군 지휘관으로서 보여준 그의 무능에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대로 준비를 안 한 원균은 휘하의 수군 병력 동원에 실패해 경상우수영의 판옥선 74척을 자침시킨 후, 휘하 장수들과 남은 4척에 나눠 타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이후 이순신과 합류해 여러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이는 이순신의 전력과 전략 덕분에 얻은 승리였다. 이순신이 작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원균의 무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유재란 발발 직전, 원균은 수군으로 왜군의 본영인 부산포를 공격하라는 조정의 무리한 명령을 거부해온 이순신을 대신해 자신이 부산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장계를 올려 임금의 환심을 얻었다. 수군에 대해 무지했던 임금과 조정은 이순신을 파직하고, 대신 원균에게 이순신의 빈자리를 맡겼다. 삼도수군통제사의 직함을 얻기 전까지 큰 문제가 없었던 원균의 무능은 이 선택으로 역사에 큰 죄를 짓는다. 원균은 아무런 대책도 전략도 없이 부산포로 출전했고, 왜군의 유인 작전과 매복에 걸려 칠천량에서 거북선을 포함한 함선과 병사를 모두 잃고 자신도 전사했다. 원균의 무능이 이순신과 백성들이 피와 눈물로 키운 최강의 조선 수군을 너무도 허무하게 괴멸시킨 것이다. 그 결과 왜군의 남해 뱃길이 열렸고, 그때까지 지켜졌던 호남과 그 땅의 무수한 백성들이 왜군에게 도륙당했다.
원균이 이순신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지 않았다면, 그의 무능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원균처럼 자기 능력에 벗어난 자리를 탐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한 집단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이면 ‘내가 내 능력을 벗어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자문해봐야 한다. 나는 공(公)과 사(私)를 구분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는가? 이해관계가 다른 구성원들의 욕구를 원만하게 조율할 수 있는가? 집단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요인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아부하는 달콤한 말보다 비판하는 쓴소리에 귀 기울이며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리더로서 집단의 발전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은 정말 집단에 도움이 되는가? ……. 만일 앞의 자문에 ‘할 수 있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욕심을 버리고, 자기 능력에 걸맞는 자리로 돌아가야 원균처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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