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여러 기사를 읽고, 세상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을 거쳐 기사는 적혀졌다. 매일매일 신문사에 출근하며 생각하는 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지?’ 뿐이었다. 주제를 한창 고르고 신문을 살펴보던 7월은 연세대 학생의 청소노동자 시위에 대한 고소가 있었고, 대학 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언넷의 1인 시위가 이어졌고, 출근하는 길에는 SPC 제품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대자보와 파리바게뜨의 할인 행사 포스터가 함께 붙여져 있었다. 그 다음에는 경찰국 출범 논란, 그런 와중에는 취임 100일 만에 대통령 지지율 20%대라는 씁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물가는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데, 물가에 비하면 한창 모자라는 임금 인상안을 두고는 노사가 팽팽히 대립했다. 엄마는 기름값이 무서워 자가용을 타지 않았고 나는 음식값이 무서워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매일 매일 올라오는 심각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쳐 난 좀 지쳐갔다. 이렇게까지 살기 힘든 세상이라니, 이렇게까지 매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라니. 희망 같은 걸 생각해 볼 체력이 안 되니 저절로 비관적이어졌고, 당연한 수순으로 허망해졌다. 내가 기사를 쓰는 행위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몇 글자를 적는 동안, 세상은 더 엄청난 일들을 벌일 테고, 나의 글은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할 텐데 이걸 뭐 하러 쓰지?’하는 생각들. 당장 최저임금 인상안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도, 그 기사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해결 방법을 늘어놓으면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이미 정해졌고, 우리는 그 최저임금을 받을 거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다른 엄청난 일이 벌어지면서 최저임금은 잊혀가겠지. 그렇게 쓰는 행위는 내 안에서 점점 가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처음 하는 교열을 앞두고 예전에 내가 썼던 기사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됐다. 어떤 식으로 교열을 받았는지, 면마다 어떤 점을 유의하고 교열에 임해야 할지 미리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청기행(청소년기후행동)과의 인터뷰, 이대남 관련 기사, 숏폼 플랫폼과 메일링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사, 가장 최근에 발행한 젊치인 기사 등 내가 쓴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좀 놀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의 내가 너무 기사를 열심히 쓴 것 같아서였다. 무슨 열정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분량이 아주 긴 기사는 물론이고, 인터뷰 요청을 12명 내외에게 한 기사도 있었다. 특히 청기행과 함께한 인터뷰 기사는 인터뷰 분량이 꼬박 10페이지를 넘었다. 그 열정과 패기에 얼떨떨하며 지금의 내가 좀 부끄러워지던 와중, 해당 인터뷰 내용은 날 정신 차리게 했다. “과학적으로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겁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급한 불부터 끄자고 여기 와있는 거예요.” 그들은 인터뷰 내내 해야 하는 일이 기후 행동이라서 기후 행동을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만 해서 그렇다고. 내가 쓰는 행위를 두고 영향력을 재고 따지던 게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힘을 의심조차 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들. 그리고 그걸 받아적은 내 글자들은 덩달아 간절했다.
생각해보면, 청기행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인터뷰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간절한 마음을 들려줬다. 진보당 이상민 후보는 자신이 속한 소수정당에서는 정치인이 배출될 가능성이 낮아 출마를 주저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행보남(행동하는보통남자들)의 김연웅 활동가는 성평등한 사회를 원하는 목소리에 대한 공격과 조롱이 지나쳐 공론장을 만들기 어려운 현실이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성평등 사회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도하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기 위해 당선시집을 거절하고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간절한 마음에서 행동했다. 여러 어려움과 직면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지켜야만 한다고 간절하게 믿는 마음, 그것을 우리는 신념이라 부른다.
어릴 적 나도 기자를 꿈꾸면서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있다. 일기장 한구석에 고등학생인 나는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의를 지킬 것이다”라고 써뒀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글도 제법 힘을 받는다. 이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쓰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안을 바꿀 수 있어서가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안의 문제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좌절과 허망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쓰겠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