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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목숨의 무게는 같아야 한다
제 968 호    발행일 : 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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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많은 목숨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뉴스를 볼 때마다 지울 수 없는 생각 중 하나이다. 지난 7월 15일 인하대 캠퍼스에서 남학생이 동급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다 5층 규모 단과대 건물에서 추락시켜 숨지게 했다. 9월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는 스토킹과 불법 촬영 등의 혐의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전주환(31)이 스토킹하던 20대 역무원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9월 1일,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선박구조물 용접 작업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왼쪽 허벅지 끼임 사고를 당하고, 4일 후인 9월 5일 과다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16일에는 경남 창원에 있는 현대비엔지스틸 냉연공장에서 하청업체 소속의 60대 노동자가 상부 천장 크레인 점검 후 이동하다 뒤에서 접근 중인 다른 천장 크레인과 기둥 사이에 하반신이 끼어 숨졌다. 사라지는 목숨은 많은데, 그들이 죽는 사유는 하나같이 다 터무니없고 허망할 뿐이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공용화장실에 숨어있던 김성민(40)에게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려 숨진 여성의 죽음이 채 잊히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여성혐오와 스토킹 범죄를 막지 못해 억울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들어오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진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아직도 생생한데,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흔하디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혐오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피해 사유를 혐오가 아닌 보복성 혹은 ‘묻지마 범죄’로 대체하는 탓에 집계되지 않지만,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828명으로 매일 산업현장에서 2명 이상이 죽고 있다.
  지난해부터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이, 올해 초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두 법안 모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스토킹 범죄 성립 요건이 비현실적이고,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인 벌금 처벌이 적정한가에 대한 비판이 있는 <스토킹 처벌법>을 시행한 이후 지난 8월까지 관련 범죄 총 377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 중 123건을 기각했다. <중대재해 처벌법>도 시행 이후 총 140여 건이 발생했지만, 재판에 넘겨진 건은 단 1건뿐이다. 더욱이 140여 건 중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건은 2건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은 사람마다 목숨의 무게가 다르게 책정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이 대사가 지금의 현실을 잘 방영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보편적인 권리인 인권,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이 인권마저 사회적 지위, 재산, 직업, 학력, 성별, 나이, 인종, 외모, 국적, 출신지 등 무수히 많은 이유로 차별해서 적용된다. 심지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조항마저 공염불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의대생과 자폐인의 목숨의 무게가 다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좌절하고 싶진 않다. 소수의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약자의 목숨 무게가 강자만 못한 것이 현실이라도, 연대하고 힘을 모은 이름 없는 약자들이 인류의 역사를 진보시켜 왔으니 말이다. 
  모든 약자가 한마음 한뜻일 수는 없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깨어있는 소비자가, 깨어있는 노동자가 강자의 불의에 항의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한다면 이 사회는 바뀔 수 있다. 연대한 시민들의 외침은 정권을 바꿀 수 있고, 연대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비윤리적인 기업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다. 죽은 자를 기리며 연대를 외치는 약자들은 다른 무고한 죽음을 없앨 수 있고, 단결한 노동자들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외쳐야 한다. ‘누구나 목숨의 무게는 같다’고, 그러니 ‘의미 없는 법으로 허무한 죽음을 만드는 걸 멈추라’고, ‘기업의 이윤보다 사람 목숨이 몇천 몇만 배는 소중하다’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목숨의 무게가 같아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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