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해외 순방을 떠난 대통령이 별 성과 없이 여러 구설수만 만들고 귀국했다. 그리고 지난 5월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우리의 국익은 없이 미국의 요구에 너무 쉽게 순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국제관계의 패러다임이 변할 때마다 큰 시련을 겪은 우리에게 지금의 국제정세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외교의 기본은 협상이다. 외교는 협상을 매개로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기술로서 그 목표는 자국의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도 위기의 순간에 협상으로 국익을 실현한 성공사례가 있다.
고려 성종 12년인 993년 80만의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했다. 당시 고려군은 30만에 불과했기에 조정은 현재의 평양인 서경(西京) 이북을 거란에 넘기고 강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서희’만은 이를 극렬히 반대하며 자신이 적진(敵陣)에 가 협상하겠다고 청했고, 성종은 이를 허락했다. 적진으로 간 서희는 적장 소손녕과의 담판으로 고려 영토를 거란에 넘기는 대신, 강동 6주 땅을 고려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를 얻어낸 서희가 사용한 협상기법을 정호수의 책 <세상을 바꾼 협상 이야기>의 내용을 기반으로 요약하면 크게 5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정보의 원칙’으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국제적 역학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당시 대륙은 송과 거란이 팽팽하게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려의 존재가 대륙의 패권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변수였다. 서희는 정보를 통해 이런 국제적 역학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협상에 유리하게 이용했다.
두 번째는 협박에 의연하게 대응하고,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 소손녕은 고려는 신라의 후예이고, 거란은 발해 땅에 세워진 고구려의 후예인데, 고려가 거란의 땅을 침범해 점령하고 있으니 돌려 달라고 협박했다. 이에 서희는 고려의 국호는 고구려에서 온 것이고,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을 서경으로 정한 우리가 고구려의 후예라며 거란이 고려의 영토를 침범했다고 역설했다.
세 번째 상대방의 목적을 읽고,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다. 서희는 거란의 침략목적이 송과 고려의 연합을 막는 데 있다고 판단했고, 거란과 고려의 국교를 제의해 거란의 의중을 파고들었다. 이에 소손녕은 거란이 고려를 침입한 진짜 이유가 조빙(朝聘: 국교를 맺고 예를 갖추는 것)에 있음을 밝히며, 서희의 제안을 환영했다.
네 번째 상대방의 제안을 바로 수락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조건으로 제시해 관철했다. 서희는 소손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고려가 거란과 국교를 맺는 조건으로 ‘환아구지(換莪舊地)’, 즉 고려의 옛 영토인 압록강 유역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압록강 유역을 고려의 땅으로 인정하라는 것으로 그 결과가 강동 6주였다.
마지막은 때를 살펴 협상을 진행했다. 서희가 소손녕과 협상을 한 시기는 11월이었다. 고려는 고구려의 ‘청야전술’(퇴각할 때 들에 불을 질러 적이 곡식을 군량미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전술)을 거란전에 이용했기에, 11월이 되자 거란군은 군량미를 확보하지 못한 채 추위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희는 이런 위기에 처한 거란군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원칙적으로 외교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승자의 이익과 패자의 손실을 합이 ‘0’인 게임)보다는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 협력을 통해 양자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게임)을 지향한다. 그래도 우리는 서희의 담판처럼 주는 것보다 우리 편이 얻는 것이 많은 협상을 성공한 협상이라 부른다. 지금 우리가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우리의 국익을 지켜줄 이 시대의 ‘서희’를 기대하는 것이 큰 욕심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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