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말. 누군가 은퇴를 결정할 때, 좌절하고 포기할 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이건 끝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야.” 그렇다면 문장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건 새로운 시작이지만 동시에 끝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건 이제껏 해왔던 일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선 정든 집을 팔아야 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선 전 직장에 사직서를 내야 한다. 입학을 하려면 졸업도 필요하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기꺼이 끝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때때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쌓아 올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엄청난 속도의 경제 발전을 시작으로 이제는 선진국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국가가 됐다. 최근에는 K-POP, K-MOVIE 등 전 세계에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는 국가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잘 사는 나라를 넘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행해졌던 민주주의 운동도 있다. 몇 번의 희생, 몇 번의 혁명을 거쳐 여기까지 온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인권, 자유와 같은 가치를 가르쳐줬다. 그것들은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를 지탱한다. 광주의 민주항쟁 정신은 민주주의 국가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광화문의 촛불은 아직 우리가 민주 국가임을 확인하는 발판이 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이 종종 위태롭게 느껴지곤 한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린 기분은 10월 29일에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누군가 ‘지금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깔려 죽는다’라고 말했고 난 그걸 믿지 못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압사’라는 단어는 너무 이상해서 다시 몇 번씩이나 확인하게 되는 글자였다. 그러다 ‘깔려 죽는다’는 ‘끼어 죽었다’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문득 깨달았다. 참사 사고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쯤, 파리바케트 공장에서는 한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죽었다. 참사는 인파가 몰릴 걸 아는 와중에도 손써볼 새 없이 벌어졌고, 공장은 누군가가 사망한 후에도 다음날까지 멀쩡히 돌아갔다. 인권 가치가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한편,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일도 있었다. 두 달 전,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하는 만화는 정부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했다. 이주 전쯤에는 도어스테핑이 중단됐다. 동남아 순방 당시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것과 관련돼 묻고 따지는 것이 과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묻고 비판하고 표현하는 힘은 모두 빼앗겼다. 이러한 변화를 직시하며 청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막막한 심정이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국가에 대한 분노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해왔다 믿어 온 것들이 물거품이 된 듯한 무력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민주주의 국가를 자신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여전히 청년들은 공정에 목마르고, 무고한 시민들은 자꾸 죽고, 여성과 장애인은 평등을 외치는데, 무엇하나 나아지지 않는다. 분명 변화하고 있다 믿었으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니 이제껏 우리가 쌓아 올려온 ‘그’ 민주주의와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 이제는 끝내야 할 차례다. 스스로 손 흔들어 떠나보내고, 또 한 번 새로운 민주주의를 맞이할 때가 왔다. 앞서 말했듯이 시작을 위해서는 이별도 필요한 법이다.
SPC 불매는 박차를 가했고, 10·29 참사 관련 시위는 우리 학교 중문에서도 벌어졌다. MBC 취재원의 전용기 탑승이 거부되자 <한겨레>, <경향신문>이 자사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고,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에는 이에 대한 기자들의 칼럼이 줄줄이 나왔다. 과거 해왔던 것처럼 고개 숙이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러한 움직임은 또다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물론 다시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다시 변화하면 된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무엇에도 굴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래야만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새롭게 맞이할 민주주의 국가를 맞이하는 환영 인사이자, 여태까지의 민주주의에게 하는 통쾌한 작별 인사다. 우리가 변화하겠다는 꼿꼿한 다짐이기도 하다. 안녕! 이미 말했지만, 안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