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의 나는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궁금한 게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매일 밤, 넘기지 못한 책의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미련을 가졌고, 반딧불과 하얀 눈에 비친 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옛이야기처럼 창밖의 가로등 불빛으로 책을 읽다 안경이라는 ‘디폴트값’을 얻었다. 새로운 걸 알게 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건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하는 탐구에서는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그 내용을 종일 암기할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 덕일까. 토론을 할때면 일당백이라는 수식언이 붙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명칭에 오점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에 내 주장에 ‘틀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만하다는 걸 깨달은 건 부끄럽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 되어서였던 거 같다.
내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고쳐먹게 된 이후로 내게는 ‘무지한 건 죄가 아니지만, 자신의 무지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건 죄이다’라는 신념이 하나 생겼다. 그동안 여러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개선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지난 어느 개표 방송에서 진행자가 광주의 수식언으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이란 말을 사용했다고 비난하는 이들, 성매매에서 구매자는 잘못이 없으니 판매자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등등. 그들의 공통점은 확고한 자신만의 믿음이 있다는 점이었고, 그 믿음이 배반된다면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나는 꼭 동족 혐오라도 있는 것마냥,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짜증과 분노를 참지 못했다. 책 한 권만 읽고 그 책이 절대적인 진실이라 떠벌리는 이들의 모습은 우매했던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사람을 진 빠지게 했다.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뀌었다. 결국 속된 말로 ‘쌈닭’이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토론을 기피하게 됐다.
수용하고 수긍하는 세상은 상당히 편리하고 편안했다. 누군가와 부딪힐 거 같다면 내가 조금만 방향을 틀면 된다. 비록 그 순간에는 자존심이 조금 상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는 공공의 평화를 위해 힘쓴 사람이 될 것이리라. 너무 힘쓰지 말고 적당하게만 살자.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다가 문득 바라본 사회는 ‘꼬라지’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였다. 열이 날 정도로 사랑했기에 열이 날 정도로 싸웠던 나의 세상이, 나의 사회가 어느새 서버 종료를 목전에 둔 것처럼 바뀌어 있었다. SNS에는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그동안 대한민국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들이 넘쳤다. 그걸 본 내게 든 첫 감정은 이런 꼴이 될 때까지 그 무엇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었고, 다음은 기계적 중립이란 허울 아래 가치와 진실을 외면한 언론에 대한 분노였으며, 마지막은 씁쓸함이었다.
그 모든 감정을 삼키고 둘러본 세상은 과거의 내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 여론이 좋지 않으면 금세 번복하거나 남 탓만 하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민족의 역사와 자존심을 세치 혀로 무너트리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는 대일 굴종외교와 이를 그럴 수도 있다고 무마해버리는 주변을 보며 깨달았다. 나 혼자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나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는 더 최악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누구도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목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어쩌면 이 ‘데스크 칼럼’의 몇 안 되는 문단들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침묵한다면 우리는 멀지 않아 이런 뉴스를 들을 수도 있다. ‘일본 기업에 밀린 국내 소부장 기업들, 연쇄 부도’, ‘국내 반도체 기술, 미국 이전’, ‘한.미.일 군사동맹 체결’, ‘누적된 무역적자에 또다시 IMF행’, ‘독도 일본에 반환’, ‘북한 침략 대비 일본군 한반도 상륙‘, ‘한.미.일 중국에 선전 포고, 전장은 한반도’ 등등.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내 판단과 주장이 틀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의 펜촉을 꺾고 입을 막더라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학 언론인이라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의무이고, 내 어릴 적의 탐구를 위한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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