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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러시아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제 974 호    발행일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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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우리는 위대한 러시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고, 지휘자인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러시아 음악의 상징이 된 그의 이름은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기념일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큰 규모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의 생일이었던 4월 1일에는 KBS 클래식 FM에서 하루 종일 그의 음악을 방송했고, 한국의 여러 도시 들에서도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풍성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라흐마니노프를 잘 알고 또 그의 음악을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피아노협주곡 2번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한국에서 그의 음악이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극장과 음악회, 그리고 심지어 <악마 판사>, <서른. 아홉>과 같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전 창작 기간 동안 150편 이상의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작곡가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13개의 건반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그는 러시아를 떠났지만, 모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전 생애를 걸쳐 울려 퍼졌으며, 자신의 천재적인 창작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께 이 러시아 음악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음악 가족 속에서 자랐고, 5세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그가 작곡가가 되기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16세 때의 일로, 당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이미 학생 시절 그는 수십 편의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피아노협주곡 1번과 푸슈킨의 서사시 <집시들>을 모티브로 한 오페라 <알레코>가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졸업식에서 큰 황금메달을 받았는데, 그는 음악원 역사상 이 메달을 받은 세번째 학생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때부터 유명세를 얻었고, 모스크바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897년 그는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 1번의 초연이 큰 실패로 끝났고, 이는 그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면서 창작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겁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몇 년간 작곡에서 손을 떼고 연주활동에만 전념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창작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실을 맺었던 때는 바로 1901년부터 1917년까지의 시기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그는 피아노협주곡 2번과 3번을 포함해 수십 편의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또한 볼쇼이 극장에서 일하며 러시아 오페라 레퍼토리를 모두 지휘했고,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꾸준히 순회공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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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작곡가는 가족과 함께 해외로 떠났습니다. 먼저는 스웨덴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망명 후 첫 9년간 그는 새로운 작품을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후 나는 작곡하고 싶은 바람을 상실했습니다. 모국을 잃어버린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겁니다.” 창작 후반기 그는 겨우 여섯 편의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여기에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교향적 춤곡>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교향적 춤곡>을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해외에서 파이니스트로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기 수입의 상당 부분을 기부했습니다. 그의 기부금은 소련 및 망명지 동포들을 돕는 데에 쓰였습니다. 대조국전쟁시기(1941~1945년) 라흐마니노프는 모국의 운명을 진실로 염려하며, 자신의 음악회 수입을 소련 국방부 재단에 보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그가 사망하기 6주 전에 있었습니다. 작곡가는 70세 생일을 며칠 남겨 둔 1943년 3월에 운명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비밀은 그의 음악이 러시아 국민음악의 전통에 기원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교회 노래와 종소리입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작곡가입니다. 내 모국은 내 성격과 나의 세계관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나의 음악은 내 성격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러시아 음악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처럼 라흐마니노프의 팬입니다. 그는 극도로 감성적이고 나무랄데 없이 멋진 멜로디를 창작하는 재능을 겸비했습니다.
  <충북대신문> 독자 여러분께 건강, 행복, 성공을 빕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십시오. 그의 음악은 여러분의 삶을 조화, 선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충만케 할 것입니다. 또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픔과 슬픔을 잊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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