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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안녕, 여름
제 974 호    발행일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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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계절이든 절기가 넘어가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한가득이 되기 마련이지만 나에게 여름은 그 과정이 더 넓고 큰 계절이다.
  긴 겨울 동안 내 안식을 책임져 주던 포근한 이불들을 집어넣고, 몸이 둔해질 정도로 두껍던 옷들을 차곡차곡 접어 상자 안에 쌓아둔다. 꽉 차면 버리던 일반 쓰레기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으로 간격을 바꿔야 미래의 내가 괴롭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깊게 새기는 건 필수이다. 부모님이 해주신 반찬들은 겨울 동안 방치돼 있다가 여름이 되면 한꺼번에 냉장고에서 퇴출당하기 일쑤다.
  하루 종일 창가를 굳게 막고 있던 암막 커튼이 해가 져 어둠이 하늘을 덮더라도 걷힌 상태로 창가에서 흔들거린다. 쌀쌀하던 공기가 후덥지근해지고, 그 속에 물기가 섞이는 게 느껴질 즈음 겨울의 끝에서 여름이 시작된다.
  사실 내게 여름은 그다지 반가운 계절은 아니었다. 나는 타고나기를 몸에 열이 많게 태어난 사람이고, 무언가 몸에 달라붙는 걸 싫어한다. 잘만 앉아있던 소파도 여름만 되면 그렇게 끈적거릴 수가 없었고, 여름마다 거실 바닥에 깔아두는 대나무 매트 위에 붙어있는 게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렇기에 외부의 열이 몸뚱아리를 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끈적끈적한 상태로 만들기까지 하는 여름은 고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고되었냐면 매년 여름마다 목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견디지 못해 잘라버려서 몇 년 동안 머리카락이 가슴께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여름 좋아 인간’으로 만드는 게 몇 있었으니, 그중 하나를 골라보자면 아마 밤늦게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름만의 열기였던 거 같다. 축제든, 사람들 간의 담소든, 그 무엇이든.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성이 받쳐준다면 사람들은 해가 지고 달이 져도 계속해서 그 열기를 이어 나가곤 했으니 말이다.
  내가 살던 김해에서는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항상 ‘가야문화축제’라는 지역 축제를 진행했는데, 개막식 마지막 순서에서 선보이는 불꽃놀이가 특히 내 여름을 눈부시게 만들어 줬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색채의 불꽃을 볼 때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고, 그걸 원동력 삼아 또 내년 여름을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의 스물두 번째 여름이 다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여름은 여전히 후덥지근하고 습하다. 심지어 아직 5월에 불과한데 폭우가 하루 종일 지속되는 탓에 잠깐의 외출에도 불구하고 신발부터 양말까지 흠뻑 젖었고, 그대로 물속으로 녹아내리고 싶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빗속을 뚫고 간 공연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서로의 나이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피터팬의 세상처럼 그곳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했다. 밖에서 쏟아지는 비는 특색 있는 보컬, 물 흐르듯 흘러가는 바이올린 소리, 기본적인 베이스가 돼 주는 피아노의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그 속에서 바깥의 폭우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 덕인 걸까? 돌아가는 길에도 폭우는 여전했지만, 공연장까지 가는 길보다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 날이 본격적으로 습해지기 몇 주 전부터 작은 자취방에는 이미 나방과 파리가 출몰하기 시작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이틀 정도 방치했던 티백에는 곰팡이가 피어 뜨거운 물로 소독까지 거쳤다. 겨우내 향기로웠던 내 주방은 어느새 미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해 방향제를 뿌려 그 냄새를 덮고자 애쓰고 있다. 고작 여름의 첫 장에 불과한데 나는 벌써 더위와 습기에 괴로워하며 올해 첫 에어컨을 개장했고 지난 몇 주간 선풍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내 절친이 됐다. 앞으로 못해도 4개월은 지나야 겨우 다 지나갈 이번 여름은 어쩌면 여태까지의 여름들보다 더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완전한 여름이 오기 전에 느낀 여름의 맑은 열기 덕에 앞으로의 습기도 조금은 가볍게 다가올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 내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지금의 계절에 말해본다.

  “이번 여름도 잘 부탁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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