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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시혜
<데스크칼럼> 기분이 중심이 되는 사회의 사람들
제 976 호    발행일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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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과 말을 하게 된다. 생각에서 비롯된 말들은 그가 살아온 생의 지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 비쳐 보이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행동거지에서 그게 다 보인다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랑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값이 누군가에 대한 증오로 항상 도출되는 건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이루려는 욕구가 있고, 사회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이 본인의 배경에서 비롯된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혹은 사회화된 형태로 잘 다듬어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그게 배려이자 준칙 중 하나가 됐다.
  그 준칙이 깨졌다는 걸 실감한 건 몇 달 전부터였던 거 같다. 어느 날 우연히 SNS에 올라온 릴스의 댓글창을 봤는데 보통이면 평범하게 반응할 만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날이 서 있었다. 그저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간 내용이 하나둘 계속해서 겹치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 눈에는 영상의 내용보다는 영상의 댓글이 먼저 들어오게 됐다. 반려동물과 장난치는 모습에 달려야 할 ‘귀엽다’는 댓글 대신 ‘왜 이렇게 대충 대하냐’, ‘좋은 주인이 아니다’라는 비방의 댓글이 달린다. 관련 없는 영상을 짜깁기하거나, 루머만을 담은 영상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하는 내용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 ‘꼴 보기 싫다’라는 둥 무조건적으로 그 내용을 믿는 댓글만을 남긴다. 무슨 영상이든 핀트에 어긋난 비난이 존재하고, 거기에 달린 댓글에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SNS상에서 타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남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에 꾸준하게 배웠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게 아니라서 해당 글을 보는 사람을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저런 식의 댓글을 남기게 된다던가. 본인에게는 콤플렉스인 요소를 이점으로 가진 이에게 괜히 화풀이를 하게 된다는 그런 내용 말이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도 당연히 배웠었다. 익명제인 인터넷을 실명제로 전환해야 한다. 계정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하자. 내 친구와 내 가족이라고 여기자 등등. 사실 그다지 실효성이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애초에 거기서 내가 어떤 반박을 한다고 한들 상황이 달라지진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러려니’의 영역이 될 수 없다. 이전에는 개별적인 비난에 불과했던 말들이 어느새 파도처럼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작은 일렁임이 모여서 해변가를 쓸어내리는 파도가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발언 하나가 순식간에 여론이 돼버린다. 그게 옳은 여론이든 옳지 않은 여론이든 상관없다. 그게 주축이 됐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 주축이 반복되면서 많은 연예인이 죽었고, 유명인을 표방한 일반인들이 사라졌다.
  분명 개인적인 심리에서 비롯됐던 비난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재밌어서 하는 비난으로 변모됐다. 물론 일개 비난 따위에 근원이 어떤지가 중요한가 싶긴 하지만 말이다. 이유가 있는 비난이면 몰라도 이유조차도 없는 비난은 그걸 듣는 이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이까지 괴롭게 만들었다. 자정하고자 하는 반응과 그 자정을 외면하는 말들. 그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던 배려는 어느새 기본이 아닌 기분이 돼 있었다.
  어쩌면 이전의 교육과 준칙은 다 의미가 없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생활화, 사람 간 심리적 거리의 증가.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이제는 새로운 배려와 준칙이 도래할 시기가 된 거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준은 특별한 가이드라인이 없던 이전과는 달리 법으로 명시될 수도 있고, 개개인의 자율에 맡길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더는 후자와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SNS를 켜면 오늘도 새로운 글과 영상이 올라온다. 거기에는 항상 댓글이나 공감 표시와 같은 리액션이 달려 있다. 그 댓글은 내가 지금까지 늘 봐왔던 비방의 내용일 수도 있고, 그 비방을 비판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전자여도 후자여도 세상은 여전히 같은 형태로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 끝도 같을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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